빈 화분 있어요.

by 묻는 사람 K

화장지를 꼬아서 장미꽃을 만들어 내는 손재주 좋은 친구가 부럽지만, 그러기도 힘들다는 일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나 같은 곰손도 있어야 조화로운 세상 아닌가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엔 욕심내지 말자고 마음먹다 보니, 노력해야 하는 일에서조차 서둘러 포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멀쩡한 시계도 내 손을 스치면 고장 나기 일쑤였다. 잘 켜지던 스탠드도 시원하게 돌아가던 선풍기도 손만 닿았다 하면 부러지거나 작동을 멈춰버렸다. 억울한 건 그걸 어찌해볼 만큼 내게는 의지도, 호기심도, 반항심도 없었다는 거다. 호기심에 시계를 분해한다든가, 기분 나쁘다고 선풍기를 발로 차는 분노 표출을 살면서 거의 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


화초를 키워보겠다고 말했을 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한 건 어머니셨다. 빠르게 포기하는 내 습관은 '그렇지?'라며 쉽게 수긍하게 했다. 가지가 똑똑 꺾인 채 물에 담긴 꽃다발보다, 흙속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쪽이 좋았지만, '쓸데없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말 못 하는 생명이 눈앞에서 말라가거나, 지나친 관심으로 썩어가는 것을 보는 일도 만만한 건 아니었으니까.


사람 일이란 뜻대로만 가는 게 아니라서, 어쩌다 보면 화분에 담긴 화초가 손에 들어왔고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 뭐든 살려내는 금손에게 가거나 시기를 놓쳐 빈 화분으로 돌아오곤 했다. 정성을 들이면 뿌리가 썩었고 무관심하면 잎부터 말라버렸다. 선한 의지가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경험을 통해 진작부터 배웠던 셈이다.


노력, 내 DNA에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걸 해보자고 마음먹은 건, 좁은 집에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우두커니 차지하고 있는 큰 화분 때문이었다. 뜯지도 않은 배양토가 해를 거듭해서 세탁기 옆 구석에 방치된 것을 보고는 '아, 이것은 운명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화초는 내게 사치일지도 몰라, 대신 먹을 수 있는 걸 키워보자. 이번 생에는 이루지 못할 귀농의 꿈을 이 이뤄보리라'.... 시장에 내려가 흙 파 한 단을 샀다. 행여 장바구니 안에서 꺾이고 짓무를까 봐 계란을 품듯 조심스레 파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분은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었고, 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었다. 그러니까... 그게.... 두 달쯤 전의 일이다.


오며 가며 보살폈다. 행여 물이 모자랄까 싶어 수시로 흙을 만져 보고, 햇볕과 그늘을 번갈아 가며 자리도 옮겨줬다.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고들 했지만, 건조한 집이라 말라버릴까 봐 마음 졸였다. 집에 오셨던 어머니께서는 '어머, 애 좀 봐. 이건 뭐니?' 쑥쑥 곧게 자랄 거라는 기대와 달리, 파는 한 서린 여자가 산발한 것처럼 정.... 자..다.


아무렴 어때, 옆으로든 위로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그러니까.... 그게....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빈 화분으로 돌아왔다. 질긴 생명력을 뽐내던 정신없던 녀석은, 라면과 야채볶음과 순댓국 속에서 존재를 한껏 드러낼 거라는 기대와 달리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노력도 배신할 때가 있다는 것쯤은 진작 경험을 통해 배웠으므로 괜찮다.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어볼까?'

'그러지 말고 우리, 마트에서 사 먹자.'

'상추는 되게 싶다던데, 그게 잘 안 자라면 이상한 거래.'

'음.... 요 아래 가게에서 한 봉지에 천원이야.'



제가 운명처럼 뭔가를 심고 싶어 지기 전에, 꼭 말씀해주세요.

혹시 빈 화분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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