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나는 항상 컸다. 그러니까 작았던 시절조차 컸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쯤은 올라와 있었고,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 반만 한 아이들과 공부했다. 어머니께서는 내 빠른 성장 속도에 '그만 커야 될 텐데' 하실 정도였다. 두 언니가 입던 옷을 더는 물려받지 못할 지경이 되자, 소매가 팔목 위까지 쑥 올라오는 작은 옷을 이리저리 늘리시며, '너무 크면 안 되는데...' 하셨다.
어머니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중학교부터 병아리 눈물만큼 찔끔찔끔 자라던 키는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즈음에는 내가 더 자라든 그러지 않든 그다지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시기마다 당면한 주요 과업이 있는 법, 이미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는 달성되었으므로 '앞으로 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할 뿐이었다.
항상 컸으므로 내게는 그만큼의 책임과 역할도 자주 주어졌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맨 뒷줄에 서서 이탈하는 아이들을 양 몰이하듯 단속했고, 체육 대회가 있는 날에는 교문 밖을 나가는 아이가 없는지 수시로 감시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임무였을 수 있지만, 큰 키와 상관있는 일인가 싶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 때도 '다 큰애'가 라면서 나를 콕 집어 나무라셨다. 그때 우리는 모두 열 살이었는데도.
키는 멈췄지만, 성숙한(?) DNA와 환경 요인에서 형성된 특징 탓에 제 나이보다 다섯 살 혹은 그보다 많은 대우를 요구받는 일은 계속되었다. 교복을 입었기에 학생으로 분류될 수 있었지만, 대학생 때 "저기 애기 엄마~"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초긍정성을 발휘해 보면, 아주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닌 게... 그러니까 나는, 진작부터 '아줌마'로 종종 불렸으므로 정작 아줌마가 되었을 땐 아무런 저항과 충격 없이 잘 흡수할 수 있었다.
동창들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던가, 얼굴에서 나이가 느껴져 서럽다고 푸념할 때도 속으로 '이 어린것들' 하며 웃었다. 노안이 더디 늙는다고 주위에서 해준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그들 말처럼 내 생물학적 나이에 맞는 대우를 받거나 취급당하며 지내고 있다. 아, 옛말이 틀린 건 없구나, 드디어 내 나이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평화롭기만 하던 오후, 눈이 침침하고 뭔가 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제법 오래된 일인 것도 같았다. 문득 백내장 수술을 했다는 친구 소식이 떠올랐고 연이어 망막박리 수술을 하신 어머니 생각도 났다. 아, 가족력도 있지!!! 더럭 겁이 났다. 꽤 오래전부터 밤 운전도 힘들었더랬는데 '혹시.... '겁먹은 아이처럼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에 염증이 있으니, 2-3일간 하루 두 번씩 약 넣으시고, 건조해지지 않게 수시로 넣는 것도 처방에 드릴 테니 생각날 때마다 넣으시고.... 노안이 시작된 건 아실 텐데, 안경 쓰실 필요는.... 다행히... 근시가 있으셔서.... 가까이 있는 걸 보시는 건.... " "그럼요. 노안이 시작될 때가 지나긴 했죠. 그럼 큰 문제는 없는 건가요?... 감사합니다." 능숙하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안과를 걸어 나왔다. 아, 인생이란.... 노안 시기가 지나니, 새로운 노안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