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울 권리

by 묻는 사람 K

출생순위 세 번째인 나는 새 옷을 입은 적이 별로 없다. 언니들보다 키가 쑥 자라고 나서, 더는 물려받을 수 없을 즈음에는 교복 입을 때라서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 그랬다는 건데, 나 또한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모든 가치는 '먹는 것'을 기준으로 중요도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용돈을 받으면 작은언니는 차곡차곡 모아 예쁜 헤어 핀과 방울을 사곤 했다. 그와 달리 나는 매번 가게로 달려가 '깐돌이(아, 이 맛있는 게 50원이었어요.^^:), 아폴로, 쫀드기'를 주워 담았다. 용돈이 인상된 중고등학교 때도 언니는 몇 달을 모아 기어이 유행하던 옷을 샀고, 나는 여러 분식집을 돌아다니며 금세 탕진했.


대부분 언니가 입지 않는 것을 골라 입었다. 가끔 몰래 입었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날도 있었지만, 먹을 것을 포기하고 옷을 사는 일은 없었다. 옷은 생존을 위한 몇 벌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이런 습성은 대학생이 되고, 직업을 갖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면바지에 면 티셔츠, 봄과 가을에는 그 위에 셔츠를 덧입고, 겨울에는 점퍼를 겹쳐 입는 게 전부였다.


친구들은 '교복 좀 그만' 입으라고 놀리곤 했고, 언니는 "너는 세상의 아름다움 절반은 모르고 사는 거야."라며 나무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구김이 덜 가고, 뭔가 묻어도 티 나지 않는 거면 됐다. 군더더기 없어서 언제, 어느 장소를 입고 가도 무난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사진 속 나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모습이다. 오색찬란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건, 활기 넘치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건 흑백의 내가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스위스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강원도, 목포, 부산, 남해에서도 심지어 다양한 음식 앞에서도 무채색의 내가 있다. 어쩐지 나만 가위로 오려낸 다면 더욱 조화로울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사진 속 나는 어쩌다 절묘하게 앵글에 잡힌 터라 더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옷차림이 신경 쓰이긴 했다. 그렇다고 단숨에 습관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일은 녹록지 않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만큼 실패를 해봐야 한다지만, 고심 끝에 구입한 옷은 어울리지 않거나 바가지 쓴 것 같은 찝찝함으로 남거나 했다.


여전히 아름다움이 백화점이나, 상점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아름다움 중 상당 부분을 모르고 살았던 건 맞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무채색 배경이 되고 싶지 않아 큰마음 먹고 꽃무늬 치마를 한 벌 샀다. 화려하고 붉은색 꽃이 정열적이고 무엇보다 아....다.


거울 앞에선 내게 남편이 말했다.

"어?.... 음.... 왜...그래?.... "

"왜? 나도 아름다워질 권리가 있다구."

"그래, 그럼 아름다워질 생각을 해야지... 왜.... 왜 그래.... "

"......"


괜찮다. 거저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이렇게 실패가 쌓이다 보면 언젠간 나만의 아름다움이 발휘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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