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포장된 무례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 헷갈린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걸까, 책 읽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걸까? 산책을 좋아하는 걸까? 걷고 있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첫 조카 또래였던 중학생 A는, 만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둘이 지냈다. A를 소개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 했고, 그만큼의 경험을 공유했다.
형편이 좋을 리 없는 그녀가 마음에 걸렸으므로 필요한 것을 종종 가져다주었다. 솜씨 좋은 친구가 만들어준 밑반찬, 큰언니 시댁에서 얻어온 김치, '이 정도면 맞겠지' 싶은 옷을 욕심껏 가방에 담을 때였다.
"이모! 걔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해?"
"......"
밥 사는 게 꽤 어려운 일이라고 동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맡겨 둔 것 없이 만날 때면 으레 '맛있는 거 사주세요.' 라던 내게 웃으면서 그러셨다. 편하게 밥을 살 수 있어서 즐겁다고.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진 친구가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을 때, 찾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을 때, 불쑥 집으로 찾아와 관심 보이는 사람들이 잔인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시누가 보내주는 반찬이 진저리 나더라고 했었다.
사과 한 봉지 가져가도 허투루 돈 쓴다며 나무라던 시어머니는 뵈러 갈 때마다 쌈짓돈을 쥐어주셔서, 어느 순간부터 안 가게 되더라고도 했었다. 돈 없으면 서러운 일이 수두룩하다고 친구가 말했다.
자존심이라는 거, 그건 최소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을 경우나 어찌해볼 수 있는 거지. 누군가에게는, 삶의 어느 순간에는, 타인에 의해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A가 안쓰러웠던 걸까, 도움 주는 내 모습에 도취되었던 걸까. 어엿한 숙녀가 되었을 A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섬세하지 못했던 진심이 상처로 기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