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기말고사 기간 중 발생한 부정행위로 학교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우리 반 일이 아니었음에도 여태 기억하는 이유는 그 사건의 핵심이 탄탄한 배경과 빼어난 미모를 갖춘 전교 탑 순위에 꼽히는 J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모르는 학생은 지극히 적었으므로 평범했던 나 역시 그녀를 알았다.
J의 부정행위는 기말고사 한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학생들이 모두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공개 사과를 하는 것으로 그 일은 마무리되었다. '발칵 뒤집힌 사건' 치고는 너무 시시하게 마무리되었으므로 그때 일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몇몇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커닝도 공부하는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그 말을 해독하기 어려웠던 나는, 그냥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공부 잘하는 학생이 받는 특혜는 어디까지 일까? 그 영향력은 언제까지 발휘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이도 저도 아니었던, 바꿔 말하면 성적으로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채 학생 신분을 벗어난 나는 '그들에게만 당연한 혜택'에 대해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대학 졸업 후 기자가 된 그녀를 (일 때문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눈웃음과 사근사근한 태도는 한층 더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단박에 알아봤지만 본능적으로 그러면 안될 것 같았던 나와 달리 J는 '애들의 시기심 때문에 고등학교 때 마음고생을 했다'며, 하여 여고 시절 기억이 없노라고 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걸 미안해하면서 한 말이었다.
J에게 그때 사건은, 동기들의 질투로 정리된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말대로 시기심으로 곤란을 겪다 보니 충격으로 기억을 모조리 잊은 걸까? 서로를 다시 찾을 만한 인연은 아니었으므로 더는 그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여전히 기자 일을 하고 있는지 말대로 유학을 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공부만 잘했던 사람들이 아주 광범위한 곳에서, 공격적이고 집요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나라를 망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녀를 떠올린다.
평범한 이들의 정당한 문제제기와 분노가 시기심으로 포장될 수 있다는 것과 몇몇 선생님이 J를 감싸기 위해 피해의식이란 명분을 씌우며 다수를 몰아붙이고 무마해 버린 일을, 씁쓸하게 곱씹는다. 한 명의 선생님도 나서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바로 잡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때의 모든 선생님이 암묵적 동조자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후,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냉담해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다.
'공정성과 형평성이 생명이나 건강을 앞설 순 없다.'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21년 1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공중 보건의, 현장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므로 국민들의 이해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여 의사 국가고시를 치르지 않았던 2,700여 명의 의대생에게 재응시 기회가 주어졌다.
몇 개의 뉴스를 골라 읽다가 특혜를 받은 그들도 같은 마음일까 상상했다. 긴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와 의사가 되었을 때, 그 무엇보다 생명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노동력을 발휘하려나? 한동안 잊고 지내던 여고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27년이 지나서도 재현되고 있다. 여전히 이도 저도 아닌 나의 목소리는 어떠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원칙과 생명 중 무엇이 중요하지?' 놀라지도 냉담해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답을 찾을 때까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