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나는 목격자였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워서 발만 동동 굴렀다. 눈을 의심하며 생때같은 수많은 목숨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억 소리조차 낼 수 없었으므로, 그해 봄은 종종 꿈으로 재현되었다.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고 모두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가을, 나는 자발적 피해자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던 물결과 일렁이던 촛불을 넋 놓고 보았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있던 한 노인이 물대포에 맞아 넘어졌고 며칠 후 사망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 머리 위를 날던 물살이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적극적 피해자가 되기로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과정 속에서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도 목격했다. 터무니없는 소문이 부풀려졌고, 상처 입은 자들을 향한 조롱이 이어졌다. 책임져야 할 이들은 앞장서서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비틀어진 사실이 진실이 되어가는 숨 막히는 순간, 이 야만의 시간에 대해 증언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14년 이후 4월이면, 안산 단원구에서는 줄지어 장례가 치러진다. 잔혹한 사건은 평범한 인간을 투사로 만들었고, 무망함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생명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었으므로 서둘러 낙관했다. 손때 묻은 노랑 고무 리본이 어느 사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기억하겠다는 결심 또한 힘을 잃었다.
해가 거듭하고, 봄이 되풀이되면서 나는, 방관자가 되었다. 생활인으로 감당해야 할 일에 몰두하면서 평안한 일상에도 익숙해졌다. 이제 내 삶 속에서 그보다 더한 일은 발생하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선장, 항해사, 조타수들이 처벌을 받았고, 청해진해운 대표에게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곧 실질적 책임을 가진 자들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거로 확신했다.
19년 11월이 되어서야 세월호 특별 수사관이 꾸려졌다. 그리고 1년 2개월 만에 활동을 공식 종료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 수사단(단장 임관혁 서울고검 검사)은 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세월호 관련 사건의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17개 사건을 수사했고 검찰 수사 외압 의혹 등 12개 사건에 대해서 무혐의 처분했다고 공표했다. 폐쇄회로 조작 의혹은 보류했고, 전국 경제인 연합회의 보수단체 지원 의혹은 사건을 재배당한다고 말했다. 선박 자동 식별 장치 항적 자료 조작 의혹은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수단은 지난 정부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 혐의, 해양경찰정 지휘부의 부실 구조 등 2개 사건 관련자를 불구속 기소한 뒤 추가 기소를 하지 않았다. 당시 법무부 장관과 민정 수석의 외압에 대해서도,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전 해양 경찰청장과 서해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는 모두 혐의를 벗었다, 삼백 네 명의 장례를 한 달 남짓 남겨둔 봄의 일이다.
그날 이후 더는 바다가 그립지 않다. 앞으로도 일탈을 꿈꾸고 자유를 갈망하며 바다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은 그저 공포, 좌절, 절망, 두려움, 아픔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한때 목격자였고, 피해자였으며, 증언자를 자처했으나, 결국 무관심한 방관자였던 나는, 그저 암묵적 동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21년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 발생 7년째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