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되돌아 갈 수 있어요.

by 묻는 사람 K

"나 아픈 거야 괜찮은데, 눈치 보이니까 그게 무서운 거지!" 퇴소를 하루 앞두고 그간 사정을 아는 지인들에게 복귀 소식을 전했을 때 친구 L이 말했다. 모두들 '몸 조심하자'라는 당부 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이상하리만큼 불안했다. 하루라도 덜 있으려고 안간힘 쓰던 때를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마음이었다. 벌써, 익숙해진 걸까? 모든 것과 차단된 시간이 좋았던 걸까?


한 달 공백으로 뒤엉켜 버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충분히 견딜 자신 있었다. 생각지 못한 번거로움도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려 봤지만, 불안감과 긴장감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았다.


"나 아픈 거야 괜찮은데.... 남에게 옮길까 봐 그게 무섭지" 코로나를 용케 잘 피해 왔을 때 나도 자주 했던 말이다. 누적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확인하면서 언제든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 보곤 했다.


진심이었다. 코로나가 겁났던 건 내가 겪을 통증보다, 타인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내 직장이 폐쇄되고, 나를 만났던 사람이 줄줄이 검사받거나 격리된다는 점이 두려웠다. 상상만으로 고통이었다.


격리 기간 중 신체 변화를 면밀하게 체크하면서, 코로나 양성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호흡곤란, 고열, 설사처럼 심각한 증상을 보고하는 자료가 간혹 눈에 띄었지만, 그때도 내게 닥칠지 모르는 통증보다, 나로 인해 펼쳐질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 아찔했다.


남편이 이송 차를 타고 가면서 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차에 탈 때, 자기가 손 흔들었잖아. 그때 담배 피우던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우리 층수를 세고 있었어.... 괜찮겠어?' 뭐 그런 걸 신경 쓰느냐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단박에 말을 막았다. 위축된 채 주변을 둘러보았을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정작 내 차례가 되었을 땐 달랐다. "방역팀이 올 때까지 환기는 하되 절대 창밖을 내다보지 마, 미리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서 큰길에서 차를 기다릴 거야. 방역팀이 빨리 끝내고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해. 아, 사람들 통행이 없을 때 왔다 가야 할 텐데...."


퇴소를 하루 앞두고 머문 자리를 청소했다. 마치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던 것처럼 소독제로 흔적을 지웠다. 화장실 변기는 수압이 약해서 수동 버튼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는 걸 메모로 남길까 하다 말았다. 지금 우리에게 요한 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걸 테니까.


코로나 확진자 해고 금지법, 차별 금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 이야기가 아닐 때라서 귀담아 두지 않았는데, 막상 복귀를 앞두다 보니 선명하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까?'


회사에 복귀 메시지를 보냈다. '방에서 최소한의 시간만 있다 가겠습니다. 당분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신 거죠? 점심 메뉴로 비빔밥과 순두부 찌개 주문할 건데 뭐로 드실래요?"


홍삼 스틱, 도라지 배즙, 토마토, 청국장 가루, 용각산, 스테이크용 고기, 케이크 그리고 두부(출소를 축하하며 라고 쓰여 있었다.)에 이르기까지 집으로 온 이후에도 끊임없이 택배가 도착했다.


일주일 결혼 휴가에도 인상 쓰던 상사는 몸보신 하라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보름이 지났다. 늦은 퇴근길 가끔은 아무것도 할 수없었던 그때, 그 공간을 떠올린다. 잠이 부족한 출근길엔 그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편견과 차별은 문밖에 있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설명할 길 없었던 불안과 긴장감은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할 수 있다면 보름 전의 내게, 너무 떨지 말라고 걱정할 거 없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리로 돌아왔듯 모두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