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생각하면 팝콘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을 만큼
내 상상력은 보잘것없지만, 대부분 소리로 전달되는
격리 시설에서는 이마저도 제법 도움이 된다.
(남편을 생활치료시설에 보낸) 경험이 있었음에도 막상 내게 닥친 현실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게다가 남편은 확진 연락 후 이송까지 하루의 시간이 있었지만,
내게 주어진 건 불과 3-4시간뿐이었다.
정신없는 틈에도 역학 조사원이 카드사와 통신사를 물어 왔다. 자가격리 중이었지만 이동 여부 확인 등 절차상 필요한 부분 같았다. 연이어 생활치료센터 담당자,
담당 공무원, 지역 보건소에서도 전화가 왔다.
이송 후 방역 담당자가 남편에게 전화할 거라는 내용도 누군가 알려주었다.
최소 열흘이라는데 뭘 챙겨야 하지? 책을 가져가도 몸이 아프면 펼치지도 못 하겠지?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은 뭐였더라? 가져가는 건 전부 폐기하고 나와야 된다던데 수첩은 괜찮나? 볼펜은 하나만 넣어 갈까? 노트북, 휴대폰 충전기... 또... 또... 뭐가 있더라?
이틀 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모든 게 넉넉하니 마음 놓으라고 혼잣말처럼 우물쭈물했다. 상기된 나와 하얗게 질린 그가 좁은 거실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말만 쏟아냈다.
진척 없이 우왕좌왕 시간만 흘렀다.
나의 관여 없이도 모든 건 빠르게 처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시설 입구에서 안내와 소독을 돕던 방호복 입은 두 사람과 이송차량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성으로만 존재했다.
성별, 목소리, 말투, 속도, 억양, 언어 습관, 전달하는 내용, 모두가 달랐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능숙함이었는데,
그 덕분에 허둥대고 불안하던 마음이 쉬이 가라앉았다.
수시로, 문밖에서는 청소기가 돌아갔고, 배달된 식사가 조심스럽게 문 앞에 놓였다. 나는 조심스럽고 일관됨에 이상하리만큼 안도했다.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닌 존엄한 인간임을 그 '조심스러움'이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종종 문밖 세상을 상상했다.
결코 마주치지 않을, 목소리와 소리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마지막날 의료팀 담당자와 통화를 끝내고 총괄팀에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잘 쉬고 나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프지 않고 나가셔서 저희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내 빈곤한 상상력을 그나마 풍요롭게 만들어준 건 오롯이 여러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 덕분이었다.
내년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는 집에서 달콤한 팝콘을 먹으며 오늘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