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 -먹기 위해 필요한 5분
만사형통- 테닝, 모옌 외. 박재우 외 옮김. 민음사
먹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대략 5분 안쪽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뜨겁고 매운 음식일 때도 비슷했다. 예외가 있다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인데, 그나마도 여럿이 있는 자리라서 상대방 먹는 속도를 맞출 필요가 덜 한 상황일 때는, 기꺼이 ‘빛보다 빠른 스피드’로 먹어 치웠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음식이 끝없이 나오는 뷔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잔칫집 초대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도 드러나지 않는 ‘품위’가 ‘돌진하듯 먹는 행위’를 통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끼니때를 맞출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먹는 일에 집착하게 되었다, 고 믿고 싶다. 허기질 때는 허겁지겁 먹었고, 배고프지 않을 때는 ‘언젠가’ 배고플 테니까 미리 먹어 두는 식이었다. 만나고 헤어질 때도 ‘안녕’ 혹은 ‘잘 지냈니?’ 안부를 묻는 대신 한사코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묻곤 했다. 그건 상대방 식사 여부가 궁금했다기보다, 나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투사된 쪽에 가까웠다. 나는 먹는 것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작아졌고 자존심 따위는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라고 확신했던 기억에 균열이 생긴 건 중학교 동창 모임에서였다. 비빔국수를 둘둘 말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너는 여전 하구나’라며 웃었다. ‘여전하다니, 그게 어떤 뜻이지? 칭찬인가? 놀리는 건가? 싸울까?’ 온갖 생각에 빠져있을 때, 옆에 앉았던 친구에게서 ‘쟨 언제나 먹는 일에 열광적이었지’라는 증언이 나왔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도시락 먹고, 화장실 다녀오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매점까지 다녀오곤 했다고, 몇'놈'은 기억을 덧붙여 말을 키웠다. 그들의 기억력을 걸고 넘어 지기엔, 내 추억도 께름칙했다. 먹기 위해 뛰고, 뛰듯이 먹었던 그때가 새록새록 깨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외식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기 익는 시간 동안 된장찌개와 냉면을 먹는 게 자연스러웠고, 모여 앉기 무섭게 다 먹었다며 일어나는 이가 항상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겼고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 생신으로 중식당 코스 요리를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들뜬 마음으로 한껏 멋을 낸 날이기도 했다. '오늘만큼은 우아하게' 먹자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바로 그때, 아버지께서 점잖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씩 내주지 말고, 만들어지는 대로 바로바로 달라'라고. 언니들은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고, 나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그들에게 동조했다.
올해도 식습관을 바꾸자는 계획과 다짐으로 시작했다. 사실 매해 계획했고, 연말이면 반성했다. 습관은 어지간히도 바꾸기 어렵다지만, 식습관은 그중 최고라며 합리화도 해보았다. 품위 있고,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은데, 번번이 '먹는 행위"에 발목 잡힌다. 나의 사람됨을 훼손하는 ‘먹는 문제’는 적지 않은 골칫거리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 둘>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행동 탓에 적지 않은 곤란을 겪었던 에피소드를 꺼내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찌 볼까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후회가 되었다. 나는 왜 느긋하게 먹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조금 덜 먹지 못할까? 문명사회에서 많이 먹는 것은 교양이 없다는 표시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귀한 집 출신으로 먹는 태고가 품위 있다고 느끼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밥통이 크다거나,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먹는 모습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거나, 머리를 묻고 힘들게 노동한다든가 하는 말로 공격해 대면 나는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고 다음번 식사 때에는 좀 더 품위 있게 먹어야지 하고 느꼈다. "(166쪽 167쪽)
"삼십여 년간의 나의 먹기 경력을 회상해 보면, 스스로가 돼지인지 개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계속 킁킁대며 영역 안을 돌면서 먹을 만한 것을 찾아서 이 밑바닥 없는 구멍을 채워 나갔다. 나는 먹는 것 때문에 너무 많은 지혜를 낭비하였다. 이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머리는 도리어 점점 아둔해지는 것 같다." (167쪽)
중국 대문호가 고민했다고, 노벨 문학상 받은 작가도 그렇다고 나까지 괜찮은 건 아니다. 전투적으로 먹는 습관을 고수하고 싶지 않다. 올해도 '천천히 여유 있게 먹기'를, 기왕이면 식탐 부리지 않고 ‘우아하게 먹기’를 첫 번째 새해 목표로 꼽아두었더랬다. 혼연일체 되어버린 습관과 다투느라 ‘너무 많은 지혜를 낭비한 탓에’,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손대지 못한 채 7월이 지나가고 있다.
*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 -둘
‘김밥’이 싫다. 밥과 김은 좋아하지만, 심지어 맛살, 달걀, 당근, 시금치, 그리고 단무지까지도 모두 잘 먹지만, 종합 선물세트처럼 한데 묶어 놓은 김밥엔 손이 안 간다. 길을 걸을 때면 식당 간판을 보며 ‘이것도 맛있겠다, 저것도 먹어봐야지’한다. 먹는 중에도 다음 메뉴를 상상할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 나다. 하지만, 배고플 때조차 김밥을 보면 슬퍼진다.
종이에 둘둘 말아 놓았거나, 번쩍이는 호일에 싼 김밥을 신줏단지 모시듯 가방에 넣고 다녔던 때도 있었더랬다. 김치, 치즈, 불고기, 매운 고추, 참치... 그 다양함에 감탄했었다. 2~3분 안에 해결할 수 있었고,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운전 중 먹기에도 만만했다. 과자나 빵은 끼니가 될 수 없지만, ‘밥’이라는 어감만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었으므로 그 또한 충분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김밥 사랑도 시간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입안에서 해체된 채소들은 서로 자기 맛 내기 바빴고, 서걱서걱했으며, 냄새 또한 지나치게 요란했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 이별의 순간은 사소한 익숙함이 균열을 내며 오는가 보다!
한번 마음을 주면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 나이지만, 돌아선 마음은 무서운 속도로 매몰차 졌다. 애정이 식자, 김밥은 설움의 음식이고, 성의 없이 끼니를 때우는 상징이라고 매도되었다. 사랑이 깊으면 미움도 커진다는 말은 진리다. 내 사랑도 증오와 미움으로 바뀌어 갔다. 미맹에 가까운 나에게도 맛없는 음식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나쁠 게 없지만, 아무 데서나 김밥은 먹지 않겠노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함으로써,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 '품위'를 잃은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김밥이 밉다. 지긋지긋해서다. 지난날을 수시로 소환해내는 김밥을 보면 자꾸만 울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