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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Dec 05. 2021

나도 괜찮습니다.

일기. 황정은 에세이. 창비. 2021.

 동시에 여러 권을 읽지 못하는 터라서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을 교차해서 순서를 정해 둔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황정은 작가의 일기'를 읽었다면, 다음에 읽을 책은 '강박장애 관련 전공서'를 배치해두는 거다. 요것만 읽고 '존 M. 렉터의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를 읽어야지 하며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면, 눈앞의 것이 지루해도 제법 견딜만하다.  


 쓸 때도 마찬가지다. 쓰고 싶은 글과 써야 만 하는 보고서를 교차로 목록에 넣어둔다. 물론 쓰고 싶다고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후지거나 엉망이지만 그래도 구분과 배열은 그리해둔다. 매년 말이면 다음 해에 할 일을 적어둔다. 매달 말에는, 다음 달에 '할' 혹은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을 정리한다. 매주, 매일 음식을 소분하듯 일을 나눈다.  


 하고 싶은 게 해야 할 일보다 항상 많지만 대체로 해야 할 일이 먼저 삭제된다. 어떤 때는 전반적인 수행이 부진해서 절반도 못 끝내 버린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년, 매달, 매주, 매일 행위를 반복한다. 동시에 두세 가지 일을 해야 하는 환경 때문인지, 멀티 태스킹이 되지 않는 성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다.


 천천히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황정은 에세이. 일기를 읽었다. 다음에 읽을 지루한 책을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마음이 베일 것 같은 서늘하고 섬세한 문장이 숨김없이 포진해 있어서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독서 모임 광재 샘께서 '쉬어가며 읽어야 하는'책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이해되고도 남아  아주 느릿느릿 책을 읽었다.


 작가는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 갈 수 있도록 일기라고 제목을 붙였다'라고 했는데, 그의 말 덕분에 마음 놓고, 1g의 부담이나 미안한 없이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나에 대해 당신이 알아도 됩니다.'라는 일종의 허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에 익숙해진> 경우가 나에게는 뭐가 있지? 에 대해 생각했고, <사람들이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므로,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위안을 얻었으며, <어떻게 지내십니까>의 문장이 가슴 아파 퇴근길에서는 한참 동안 코를 훌쩍였다.

 

 다음 글을 기다린다는 기대와 성급함이 무례함으로 전달될까 봐, 나는 그냥 아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내가 작가와 글과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고 태도이니까. 다만 나 역시 '각자 건강해서'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만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눈이 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기 예보를 본 기억이 없다. 늘 그렇듯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창문을 열어 팔을 뻗어 봐도 바람이 거칠지 않다. 비가 내리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화창하든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그런 날이고, 그런 마음이다.


 다만, 그저,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딱 그것뿐이다.   

    



"가수 이효리가 함께 캠핑을 떠난 동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고사리 파스타를 조리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고사리를 캐내 찌고 말리는 과정의 수고를 이야기하며 한가닥도 흘리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고사리를 잘 불려 볶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들어간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과 차마 용서를 청하지 못할 사람이 늘어가는 일이기도 한데 그건 내가 살아 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게 괜찮다."

<163,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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