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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Nov 17. 2021

속삭이는 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검은 숲. 2020 개정

"누군가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법이지....."





거의 매일 밤 미드를 본다. 어떤 하루를 보냈건 상관없이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2인용 소파에 몸을 구겨 넣은 채 텔레비전을 켠다. 간혹 예외도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그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쓴다.

오랜 습관이다.


  CSI 라스베이거스, 뉴욕, 마이애미, 크리미널 마인드, FBI, 멘탈리스트, 시카고 PD, NCIS. 

그때그때 컨디션에 맞춰 원하는 걸 고른다. 

영상 대부분 40분을 약간 넘기기 때문에 3편 정도를 연속으로 보는 셈이다.


아침마다 헤롱 거리는 나를 보 '차라리 한 시간이라도 일찍 자!'라고 남편은 잔소리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알지만 못하는 것 있고,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은  있다.

마음 몸, 생각과 이성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하도 여러 번 본터라서 시작과 동시에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도망가고 잡히는지도 알지만 보고 또 본다.

손가락 까딱하고 싶지 않을 때는 CSI 마이애미, FBI, 멘탈리스트를 고른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호라시오 반장이, OA와 매기가, 제인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대부분 범인은 잡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정의는 승리하고 선과 악은 명쾌하게 구분된다. 

정신 에너지를 들일 필요가 없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지켜만 보면 된다.

심지어 중간을 한참 뛰어 넘겨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간단함이 필요해서다.

피 터지고 폭탄과 총알이 날아들어도 결국엔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날 거라는 확신믿음.

그걸 통해 위안고 싶은 거다. 어쨌거나 현실은 그러지 않으니까.

내가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 그들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니까.


장바구니에 담두고 구입을 미뤘던 <속삭이는 자>가 다른 책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함께 배송되었다.

120분짜리 영화 벅차 40분짜리 미드를  나눠보는 나로서는 책 두께를 보는 순간 심적 부담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빠져들었다. 


이 책은 미드로 비유하<크리미널 마인드>에 <멘탈리스트>곁들인 느낌이.  범죄학자가 쓴 소설답게 촘촘하고 속도감 있고 흥미롭고 반전도 다. 추리소설로써의 기본 충분히 갖춘 셈이.

다만 내가 즐겨보는 미드처럼 간단하지도 뻔하지도 않다.


애써 외면해 왔던, 인간의 속성과 범죄 심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선과 악의 구분은 애매하고, 선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잘못된 선택을 하며,

트라우마가 판단력을 흐리기도 한다.  또한, 맹점 때문에 중요한 본질을 놓치기도 한다.


고조된 각성 상태를 이완하고,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 밤마다 미드에 몰두하는 나이지만,

결국 마이애미의 호라시오 반장보다, 크리미널 마인드의 하치에게 더욱 끌리는 이유는 그게 더 현실에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속삭이는 자>, 오랜만에 잘 된 추리소설을 읽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앨버트가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약한 부분을 공략하고, 자연스럽게 침투할 테지.

당신과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흔들고, 친숙함을 신뢰감으로 혼돈하게 만들 것이다.

부지런한 앨버트와 적극적인 프랭키를 피할 수 있을까?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힘! 그게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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