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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Aug 15. 2023

죽음의 심리학

레이첼멘지스, 로스멘지스 지음. 석혜미 옮김. (주)로크미디어 2023

한 동안 이 책 저책 옮겨 잡아가며 허우적거렸다. 깊이 가라앉고 싶지 않은 발버둥이었달까. 끝이 어딘지 몰랐으므로 발이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 나 역시 모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손이 더 꼭 쥐어졌다.


'지금은 안식을 찾으셨을 거야, 그곳은 여기보다 안전해, 혼자 걷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가실 거야. 수박, 회, 해물탕도 배부르게 드실 테지. 더는 병원에서 이리저리 들쑤심을 당하지 않아도 되잖아. 아빠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 이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부정하고 나 자신과 사랑했던 모든 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한 욕구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가까이에서 나를 자애롭게 내려다보며 관심을 쏟길 바란다. (130쪽)


 '죽음'을 소재로 한 책은 관심을 두고 찾아 읽곤 하는데, 감히 말하자면 <죽음의 심리학>은 그중에서도 손꼽을 만하다. 죽음 불안, 죽음의 현저성을 개인 삶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모두 14개의 주제로 구분해서 밀도 있게 기술한 책이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도 밝힌 바 있듯이 죽음에 대한 불안이 정신적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는 무수하다. 개인이 호소하는 불안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 믿음, 두려움으로 향하는 경우를 임상 현장에서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죽음을 공개적으로 논하는 일은 금기시된다. 대상, 상황, 시기, 모임의 성격 등등 분위기를 고려하다 보면 입을 떼기란 쉽지 않다. 매일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직업을 가진 나 역시도, 내 삶 속에서는 다소 꺼리게 되는 주제이기도 다.   


 최근 생생한 죽음의 과정을 경험하고, 상실의 시간을 견디면서야 비로소 아주 조금씩 서로가 생각하고 품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진 나를 태어나게 한 순간부터 존재가 사라진 지금까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다.


 아버지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서 나를 미워하다, 주변 사람을 원망하다, 의료 시스템에 분노하다 또 다른 시빗거리를 찾곤 했다. 위로로 건넨 말에 되레 상처받고, 무심함에 화를 내고, 집착과 위안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불안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죽음의 궁극성을 수용하고 진실을 마주해야만 존재론적 불안 없이 살 수 있으며, 한정된 시간 내에 자유롭게 열정적이고 진실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몽상으로 나 자신을 속이면 지구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잠재력을 펼치는 데 방해가 되어 자랑스러운 인생을 살기 어렵다. (203쪽)


 며칠째 계속되던 여름 감기는 처음엔 목 이물감으로, 콧물로, 기침에서 근육통으로 더해지더니 결국 모든 게 합해져 증상은 극에 달했고. 이틀을 꼬박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빠가 세상에서 사라진 지 백일이 되는 날을 맨 정신으로 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말고, 일어날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도록 하라. 그러면 삶이 잘 흘러갈 것이다. (365쪽)

 

 나는 코 앞으로 다가온 죽음조차 부정했다. 외면하면 지나갈 거라고 믿(고 싶) 었고, 미신과 근거 없는 단서에 기댔다. 모든 게 후회로 남아 있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후회를, 후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땅히 일어날 일이었으므로 내게도 닥쳤다.


 책에서 인용한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를 슬픔으로 이끄는 모든 사건에서 이 원칙을 기억하라. 이것은 불행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으로서 버텨볼 행운이다. 게다가 그는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사고, 질병, 죽음, 상실을 불평하지 말고 평범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사건은 지구 역사상 언제나 일어나고 또 일어났던 일이다. 우리 자신은 이 일을 전에 겪었던 수십억 명의 인간보다 조금도 특별할 것이 없다. 


 죽음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슬픔은 슬픔으로 인정하는 일, 누구나 겪는 일을 나 역시 피하지 못했으나, 이 또한 삶이고, 나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고, 어느 순간엔 누구나 그러하듯 다른 존재를 위해 자리를 기꺼이 내주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죽음 통해 내 후반의 삶을 대비하도록 알려주셨다.


삶의 유한성과 인간의 단순한 동물적 본성을 받아들여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 반대다. 수용은 절대 반복될 수 없는 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과정의 시작이다. 존재의 진실을 수용해야만 살 가치가 있는 진정성 있고 개인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죽음은 진짜다. 이 사실을 바꿀 방법은 없다. (334쪽)


그러므로 나는 죽음을 생각하며 내게 남은 고유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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