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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Jul 31. 2023

완득이

김려령 장편소설. 창비. 2008.

 익숙하다는 이유로 마치 서로 알고 지낸 사람이려니 할 때가 있다. 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영화, 드라마가 있고, 당연히 읽었으려니 하는 책도 있다. 내게는 <완득이>가 그랬다. 제목마저 친숙한 ‘완득이’를 처음 알게 된 건 십 년도 더 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의 나는 감히 엄두 내지 않았을 일을 그때의 나는 종종 시도했다. 부산으로 가는 첫 기차와 서울로 올라오는 마지막 표를 끊고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간 것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도 아니었고, 미리 보고 싶은 걸 골라 놓는 준비성도 없으면서 무작정 감행했다. 그런 마음이었다. ‘운 좋으면 한두 편 보는 거고, 아니면 말자.’ 돌아다니며 축제 분위기를 즐기다 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전당 계단에 앉아, 지는 해를 보았다. 그러다 몇몇 스텝이 ‘우리 완득이’를 부르며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완득이가 누구길래 애타게 찾는 거야?’라면서.  


 이후, 영화는 제법 흥행했다. (사람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걸 기사를 통해 알았다.) 몇몇 사회 이슈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걸출한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유명한 완득이로 자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명세에 홀려 제대로 볼 생각을 안 했다. 어느 자리에서건 보지 않고, 읽지 않고도, 적당히 맞장구칠 정도의 정보가 쌓였던 까닭이다.  


 최근 이 소설을 펼치게 된 건 독서모임에서 “영상으로 제작된 책”으로 주제가 정해졌고, 그 첫 번째가 <김려령 장편소설, 완득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더운 여름, 지리한 장마, 모두가 일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 책 한 장 읽는 일이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고려해서 호스트가 내린 배려 깊은 결정이었다. ‘읽지 못하면 보고라도 오세요.’라는.       


 등장인물 각각의 매력을 떠나,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발랄한 문장과 행간 사이에 녹아든 처연한 유머가 무척 인상 깊었다. “손님들은 민구 삼촌이 말을 안 하면 건방지다고 했고, 말을 하면 바로 비웃어 댔다.” 말을 더듬는 민구 삼촌은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이기도 하고 지능이 평균 범주에서 벗어난 이다. 하지만 춤을 아주 잘 추고, 키 작은 완득이 아버지를 진짜 어른으로 대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카바레에서 춤을 추었으나 그곳이 문을 닫으면서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기도, 장 서는 곳을 찾아 팔도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수완이 좋을 리도 없지만,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지 못하게 요구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여, 아들은 “난쟁이다, 난쟁이, 그냥 봐도 다 아는데 굳이 확인 사살을 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경멸이 아니라 그냥 미워한다. 있는 힘껏 분노하지도 못하는,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봤고, 그러면서도 웃는 모습을 보았다.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싫었고, 웃으면서도 울까 봐 괜한 걱정을 했던” 완득이가 사는 세상을 짐작해 보려다가 멈칫했다. 작위적인 공감엔 진저리가 나는데, 습관처럼 나는 이런다. 소설 결말을 극으로 몰고 가지 않아서, 실체를 너무 현실에 가깝게 까발리지 않아서, 지독하게 잡아끌지 않아서 그게 좋았고 위로가 되었다. 


 헉 소리 나게 더운 여름, 답답한 일은 투성이고, 쉽게 낙담하거나 빠르게 냉소하게 되는 지금, 내게는 이런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김려령 작가에게, 완득이를 제대로 보게 해 준 호스트에게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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