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과 기쁨의 시작

살려주세요.

by 책미네랄

한때,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피로감이 몰려왔고,

처음에는 단순한 피곤함이라 생각했습니다.

러나 그것이 임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몸의 변화는 예상보다 컸습니다.

어떤 날은 속이 메슥거렸고,

다른 날은 자두가 간절히 먹고 싶었습니다.

맛있게 먹었던 자두 한 알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견디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가오리를 먹으려고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임신 중에는 가오리를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오리는 한 몸으로 붙어 있는 생선이기에

아이의 손가락이 붙을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먹는 것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예쁜 것,

싱싱한 것 위주로 먹으려 노력했습니다.

문득 하루는 깨가 먹고 싶어 시장에서

낱개 봉지를 사 한동안 입에 자주 털어 넣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깨를 한 되는 먹은 것 같습니다.



1993년, 제게는 자동차가 없었습니다. 출장도 버스로 다녀야 했고,

배가 많이 불러온 시기에는 2일, 7일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마다

버스 안이 가득 차 통로를 빠져나오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겨울날

늦잠을 자면 출근시간에 맞게 도착하려면 버스를 놓칠까 봐 나온 배를 안고

헉헉거리며 뛰어야 했습니다.

밤에는 바로 눕지 못해 옆으로 기대어 자야 했고,

자주 깨고, 쥐가 나서 푹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산이 가까워지자 아기 옷과 준비물을 가방에 챙겨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아직 아기가 나올 준비가 안 되었다"며 일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1시간 넘는 거리를 다시 돌아가야 했고,

다시 병원에 가야 해서 남편은 짜증을 냈습니다.


출산이 늦어질까 봐 친정집 앞 산을 오르고,

양반다리로 앉아 무릎을 눌렀습니다.

그날 밤,

진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30분 간격으로 오던 진통은 점점 짧아졌고,

새벽 1시, 엄마는 밥을 하셨습니다.

산모가 힘을 내야 한다며 밥을 먹였습니다.


남편은 전날 병원에서 헛걸음한 것이 화가 나 술을 마셨고,

새벽이 되어 택시를 부르려 했을 때 아버지는

"첫아기는 출산까지 13시간 이상 걸린다.

버스를 타고 가도 괜찮다"라고 하셨습니다.

버스 안에서 진통은 10분 간격이 되었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분만실로 들어갔습니다.


키가 작지만 나는 자연분만을 선택했습니다.

진통을 견딜 만했는데 막바지에는

천정 형광등불이 흐리해지고 흔들기까지 한

진통으로 호흡까지 힘들어 간호사에게

"살려주세요. 수술하게 해 주세요" 요청했다.

간호사는 거의 애기가 다 내려왔고

수술이 밀려서 안된다고 말했다.


분만실에 들어간 후

오후 3시, 딸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절해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간호사에게 가장 먼저 물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은 다 열 개인가요?" 간호사는

"정상입니다, 따님이 태어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딸이라는 소리에

"너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여야 하다니"

출산의 고통을 겪을 딸 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출산 그날,

엄마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손녀는 태어났지만,

저는 2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아 엄마는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그때 정말 시커멓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만큼 엄마에게 미안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첫 딸을 낳은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내놓는 엄청난 기적이라는 것을요.

어르신들은 첫 딸이 살림 밑천이라며,

축하해 주셨고,

제 딸은 이후 남동생을 돌보며 바쁜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딸이 태어난 그날의 고통은 제게 선물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쁨은 자녀를 얻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출산의 고통 속에서 저는 새로운 사랑을 배웠고,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기쁨이 있지만, 가장 빛나는 기쁨은 내 아이를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딸을 처음 대면 한 순간!

평생 알지 못한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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