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넝쿨

가족

by 책미네랄

출근길, 길가 밭에 드리운 호박넝쿨이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고개를 내민 작은 애호박들이 초록잎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그 앙증맞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손녀의 통통한 볼이 떠오른다.

살짝 꼬집으면 "앙!" 하고 웃을 것만 같은, 생기 넘치는 초록빛이다.


요즘은 거름 냄새가 예전과 다르다.

포대에 담긴 비료는 말끔하고 정돈된 냄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보던 호박밭은 조금 달랐다.


밭 한쪽에 깊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인분을 부어 넣었다.

바람이 방향을 틀면 냄새는 금세 코끝을 찌르고,

나는 숨을 참은 채 고양이처럼 잽싸게

그 곁을 지나가야 했다.

지독한 냄새 속에서도 호박은 자랐다.

세상의 가장 낮고 깊은 자리에 몸을 묻고도, 초록은 그렇게 피어났다.


그 시절, 간식이 귀하던 우리는

엄마가 부쳐준 애호박 부침개 하나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달궈진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호박의 노릇한 색,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향기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쟁반에 수북이 쌓인 부침개 앞에서

우리는 다투듯 달려가 손으로 하나씩 집어 먹었다.

그 맛은 달고, 부드럽고, 배고픔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가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낳은 내 아이였지만,

남들 앞에서 예쁘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호박처럼 둥글고, 어딘지 모르게 투박해 보였던 딸.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고 자라

어느새 야무지고 단정한 아가씨가 되었다.

서툰 시절을 지나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 딸은

누구보다도 맑고 고운 사람으로 자라 있었다.

어릴 적 딸을 보았던 이들은

“촌에서 용 났다”며 웃곤 했다.

어쩌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던 애호박처럼

딸은 그 속에서 천천히,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호박넝쿨은 한 개의 열매만을 맺지 않는다.

넝쿨은 자꾸만 뻗어나가고,

그 사이사이 여러 개의 호박이 열린다.

어머니의 손에서 내가 자랐고,

나는 딸을 낳고, 딸은 또 두 손녀를 품었다.

생명은 그렇게 이어지고,

사랑은 넝쿨처럼 자라난다.


나는 소망한다.

작은 마을의 들녘마다, 골목마다

호박넝쿨처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자라나길.

'응애' 하고 터지는 첫울음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따스하게 물들였으면.

밭 하나를 온전히 감싸 안는 넝쿨처럼

삶과 사랑이, 생명이 우리 곁을 가득 채우길 바란다.


각 사람은 엄마의 넝쿨 아래에서 자라난

하나의 애틋한 열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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