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그린과 함께
봄은 늘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누구도 그것이 시작임을 정확히 말하지 않지만, 막 돋아난 잎사귀들이 레몬그린의 빛을 품을 때, 세상은 이미 봄이라는 계절을 열고 있다.
그 잎들은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생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 겨울을 견뎌낸 나무는, 말없이 그 잎들을 밀어 올리고, 햇살은 주저 없이 그 빛에 힘을 보탠다.
개나리는 서두르듯 피어나고, 벚꽃은 아직, 몇 송이만 가지 끝에 머문다. 모든 것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그 시작의 기척이 공기를 채운다.
꽃이 피는 순간은 짧다. 하지만 그 직전의 시간은 길고 깊다. 봉오리가 열리는 찰나, 그 트임의 순간에는
응축된 기다림과 조용한 긴장, 살아 있는 것들의 깊은 떨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떨림은 곧 틔움이 된다.
단지 열리는 것을 넘어, 안에 머물던 생명이 밖을 향해 조용히 자라는 일. 트임이 시작이라면, 틔움은 그 시작이 삶으로 번져가는 과정이다. 바로 그 흐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귀하다. 찬란함 직전의 고요. 피어남을 준비하는 존재의 결.
화려한 꽃보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에 마음을 두게 되는 이유다. 화려함이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다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꽃이 진 자리의 공허함, 빛이 지난 자리의 고요함. 그 뒤에 오는 회색빛 감정들이 문득, 마음을 멈추게 한다.그래서 어떤 마음은 찬란함을 선택하는 대신, 그 직전의 고요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삶이 자신을 틔워가는 방식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음은 계절을 넘어, 삶을 향한다.
자연은 흘러간다. 봄은 피어나고, 여름은 무르익고,
가을은 스러지며, 겨울은 모든 것을 쉬게 한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의 시작, 그 끝의 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짓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말 없는 준비의 시간이 있다. 봉오리 속에 가득 차오르는 생명의 기운처럼,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가 끝나기 전에도
그 끝은 천천히 우리 안에서 자리를 정리해 간다.
꽃이 지는 일, 관계가 끝나는 일, 하루가 저무는 일.
그 모든 끝은 결코 단절이 아니라 다음 시작의 준비일지 모른다. 자연은 그것을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해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간다. 있는 그대로, 순환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러니 삶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작을 서두르지 않고, 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어나고 스러지는 모든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놓아두는 법.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생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기 전, 가장 깊은 떨림이 있다. 생이 시작되기 전, 가장 조용한 고요가 있다. 그리고 삶은, 그 고요와 떨림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이 계절에 배워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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