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Spring

너무 아름다워 아쉬운 것들에 대하여

by 그레이스


차 안에서 가볍게 식사를 챙겼다.


따뜻한 음료 한 모금과 부드러운 간식 몇 입.

이 작은 공간은 어느새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어 있다.

쉼터, 머무름의 공간, 마음을 고요히 정돈하는 은밀한 피난처처럼 고단한 일상 속에서 이 정도의 고요함이면 충분하다


주말의 느긋함이 평일의 틈에도 스며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나는 익숙한 리듬 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쉼을 만들어낸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설 때면, 나는 그 정적이 좋다.

빨간 불의 여백은 종종 내게 조용한 쉼을 허락해 준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를 정돈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나는 신호에 걸리기를 바랄 때가 있다.

서둘러 지나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신호등 앞에 멈춰 선 짧은 정적조차, 누군가 조용히 내게 건네준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신호에 걸리기를 바란다.

바란다.

바란다.


삶은 종종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불안한 순간은 오히려 그 속도가 느려졌을 때 찾아온다.

익숙한 리듬에서 벗어나면, 어딘가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스며든다.

나는 바쁨 속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안다. 그렇게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언젠가, 모든 것의 속도가 천천히 낮춰지는 계절이 오면,

나도 마음 놓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지금은 그저 지나쳐야만 했던 순간들을 천천히 어루만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며칠 전, 지나치던 벚나무는 아직 조용했다.

오늘은 가지마다 꽃이 터져 있다.

팝콘처럼 톡톡 피어난 벚꽃들이 나무를 채우고 있다.


그만 피우고 말았다.


너무도 순식간에, 너무도 화사하게.

그 ‘말았다’라는 말이 오늘따라 오래 맴돈다.

꽃이 피어버리고 말았다는, 그리고 나도 오늘을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꽃은, 늘 찬란하다. 하지만 그 찬란함 앞에 서면 가끔 마음이 먼저 아려온다.

예고 없이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너무 눈부셔서 오래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

그 끝을 미리 염려하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조금 더 앞당겨 움직이는 듯한 이 감각.


그래서 나는, 굳이 피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을 사랑하게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

있는 그대로 충분한 존재의 시간들.

벅차지만, 그래서 마음이 말랑해진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한참을 달려온 줄 알았는데, 어느새 뒤에 있던 차가 옆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분명 더 앞서고 있다고 여겼는데, 되레 내가 멈춰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속도를 냈다고 해서 더 멀리 도달한 것도 아니고, 천천히 가는 이들이 덜 의미 있게 사는 것도 아니라는 걸 오늘도 조용히 배워간다.

내가 향하던 목적이 무거워질수록, 잠깐 멈추어 바라보는 능력이 더 귀해진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자고.


내가 어디쯤에 있든,

그저 눈앞의 계절을 스쳐 지나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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