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시선에서 관계의 시선으로
정중하지만 낯설고, 공감하는 듯하지만 공허하다
감시와 응시 사이, 우리는 그 틈에서 살아간다.
요즘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동시에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다.
글 하나가 때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감지당하는 느낌이 따라온다.
감시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감시는 익숙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정보와 투명성, 연결과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그러나 정밀하게 구조화시킨다.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 중앙 감시자는 보이지 않지만, 모두는 감시당한다.
보이지 않기에, 더 철저히 스스로를 정돈하게 된다. 언제든 누군가 보고 있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그것은 가장 강력한 통제의 방식이 된다.
푸코는 이 구조를 현대 사회로 확장시켰다. 병원, 학교, 공장, 그리고 지금은 SNS.
우리는 감시받고 있음을 모를 때에만 자유롭다고 착각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서로를 보고, 또 서로에게 보인다. 누군가만이 감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모두가 서로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평가한다. 다중 감시의 시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동시에 노출되고 관찰자가 되는 구조.
그 구조는 더 정교하고, 더 은근하다.
내가 올린 문장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해석의 대상이 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해석을 관찰한다.
내가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보임은 때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며, 회복이 된다. 보이는 순간, 나는 다시 나를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 내 글을 응시하듯 읽어 줄지도 모른다는 마음. 그 마음은 감시의 시선을 지나, 응시의 세계에 닿는다.
그렇게 우리는, 감시를 지나 응시와 기억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