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없는 하루

충분한 마음의 징후

by 그레이스



우리 집 냉장고에 달걀이 없으면
대형마트에 가는 날이다.


대단한 기준은 아니지만, 익숙한 삶의 리듬이다.

오늘은 일을 마친 뒤 시장에 들를 생각이었다.

장을 보러 나갈 때면, 아이들에게 꼭 묻는다.

“시장 가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은 둘째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여느 때처럼.

“엄마 오늘 시장 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어.”


별것 아닐 수 있는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머물렀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던 아이였다.

페00쉐 초콜릿, 아이스크림…

언제든 떠오르던 욕구의 목록이 오늘은 조용했다.


혹시 마음이 우울한 걸까?

무언가 누르고 있는 감정이 있어서,

입맛조차 나지 않는 상태는 아닐까?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 염려를 건드렸다.


하지만 곧 실마리가 풀렸다.

아이는 오늘, 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물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물총 싸움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사실 어젯밤, 내가 늦게 들어왔을 때

아이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나 내일 학교 끝나고 도서관 물놀이 가도 되지?”

이미 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나의 허락을 구하는 말투였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아침부터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아이는

별다른 말 없이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챙겨 두었고,

학교에 들렀다가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물놀이 장소로 향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나를 또 멈춰 세웠다.

“엄마, 나 오늘 좀 피곤해.”


피곤할 수 있지.

하지만 이유를 듣고 나서 나는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


“어제 영어 수업 오늘 거까지 몰아서 3시간 했어.

오늘 물총 싸움 가야 하니까.

거기 꼭 가고 싶어서 내가 미리 했어요.”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는 지금,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고, 책임졌던 거다.


어른인 나도 가끔 미루는 일들을

이 아이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의 말 없는 준비,

말없는 욕구,

말없는 감사.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아이는

이미 꽤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게 없었던 이유는

결핍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은 기대감과 자율성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디시와 리처드 라이언이 제시한 자기 결정성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충족될 때 내면으로부터 동기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의 아이는 딱 그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한 상태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물놀이)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에 필요한 준비물을 직접 챙겼으며,

물놀이에 가기 위해 학원 수업도 전날 미리 몰아서 듣는 계획을 세웠다.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활동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별도로 보상으로서의 음식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아이의 하루는 충분히 풍성했다.

그 풍성함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더는 부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 깨달음은 내게 작은 각성을 안겨줬다.

나는 아이의 욕구 없음을 곧장 정서적 결핍과 연결 지으려 했다.

그 자체가 아이를 아직도 채워줘야 할 존재로 보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하고, 준비하고, 내게 허락을 구하며

일정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 깊이 느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는 자율적인 아이이고,

자율적인 아이는 신뢰받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읽히지 않은 마음을 매일 새롭게 읽어가는 일이다.

말보다, 행동보다, 때론 무심한 듯한 침묵 속에서

그 마음이 이미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오늘 시장에 가서 나는 달걀을 사겠지만,

그보다 더 분명히 얻은 것이 있다.

아이의 마음이 지금 어디쯤 머물러 있는지,

그 마음이 꽤 괜찮은 곳에 있다는 것.


부모의 사랑은,

결핍을 채워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충분해진 아이를 조용히 응시하는 시선에도,

깊고 묵직한 사랑이 깃든다.


나는 사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게 참 많다.

함께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도 가보고,

도서관의 긴 오후를 나란히 앉아 보내고,

가끔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

(하하하, 적고보니 내가 누리고 싶은 삶이라 아이는 별로겠네요ㅎ)


하지만 지금 나는

현실의 가장자리에서

그저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

아이가 지금 세상의 크기를 모른다는 것에도,

그 안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아가는 것에도.


그런데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또 고맙다.

아이의 작고 조용한 만족이

언젠가 세상을 만났을 때

더 깊은 감사가 될 거라는 걸 믿기에.


내가 다 해주지 못한 삶에서도

아이 스스로 기쁨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

그건 내게도 위로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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