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서
쪽잠이 이어진다.피로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몸 어딘가에 눅진하게 쌓여 있다.
의식은 자꾸 미끄러지고,
알람을 맞춰두고도
그 울림을 마음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급히 샤워를 마치고,
스킨 하나만 바른 채 집을 나섰다.
거울 앞에 머무를 여유는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서야 비로소
오늘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맨 얼굴이었다.
신호등이 바뀌는 짧은 정지의 틈마다
나는 백미러에 비친 얼굴을 따라
미처 다 그리지 못한 눈썹을 단정히 덧그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 시간에 눈을 감고 쪽잠을 청했을 것이다.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조금은 느슨해졌을 시간.
하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신호등 앞에서조차
나는 하루를 버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숨가쁘게 시작되었고,
그 끝이 어디쯤일지는 가늠되지 않는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토록 가쁜 하루는 늘 짧기만 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한 달이 훌쩍 지나 있다.
여름이 오고 있다.
이번 여름엔 시간이 조금 날지도 모른다.
계획해둔 일들이 있고,
머릿속에서 조용히 여물고 있는 생각들도 있다.
어쩌면, 그 방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늘이 아니다.
차 안에 잠시 멈춰 앉아 창밖을 본다.
생각보다 바람이 괜찮다.
덥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공기.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뜻밖에 다정하게 다가온다.
이 정도면 괜찮은 날씨라고,
나뭇잎들마저 말해주는 듯하다.
더워지기 전의 짧은 틈,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은 다정할 수 있는 시간.
그 틈에서 나 역시
작은 준비들을 되짚는다.
차 안에는 언제나처럼
헤어브러시와 눈썹 펜슬이 놓여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6월의 시작.
마음은 이미, 그달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