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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의 무게

미리 만나본 가을

by 그레이스



아침, 창가에 매미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한여름의 끝자락을 담은 듯, 뜨겁고도 고요한 그 모습은 내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들의 무언(無言)은 위로 같아 옅은 미소를 지었고, 계절은 그렇게 조용히 내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침, 창가 한켠에 조용히 자리한 매미 두 마리.

서로의 마음을 나누듯 말없이 마주한 채, 한여름의 뜨거움을 다 쏟아낸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오랫동안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한때 그 울음소리는 내 단잠을 자주 깨웠지만, 오늘은 고요함만이 창밖을 감쌌다. 바람은 여전히 여름의 잔열을 품고 있었으나, 내 안에는 이미 가을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가을은 늘 낯설고, 어딘가 아픈 계절이었다. 다가오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내 안에 번져, 불현듯 나를 물들이곤 했다. ‘계절을 잘 탄다’는 말이 단순한 날씨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를 가리킨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요즘 나는 지난날의 마음의 풍경을 기록한다. 때로는 짧고 선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고 긴 문장으로.

며칠 전에는 너무 멀리 다녀왔다. 대학 시절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그때의 웃음, 설렘, 불안, 그리고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기억은 언제나 감정을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그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 오래 바라보았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펼치듯, 마음에 살며시 펼쳤다.

그 안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그리고 아픔이 공존했고, 그 조화는 때로 나를 웃게 하고, 때로는 눈물을 머금게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두고,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푹 쉬었다. 몸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의 무게는 그 자리에 있었다. 설렘과 약간의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자꾸만 마음을 흔들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게가 가슴 한켠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게를 멈춤이 아니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에어컨의 찬 기운이 피부를 스치자, 마치 입추가 주는 의미처럼 마음도 어느새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익숙했던 뜨거운 공기와 무거운 열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내 안에는 조용히 다가오는 가을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오늘은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따뜻한 커피를 선택했다. 차가운 바람에 서늘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입술에 닿는 따스함이 천천히 퍼져 나가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조금씩 녹여내고, 그 온기는 마치 오래된 친구의 다정한 위로처럼 내 안 깊숙이 스며들었다.


서늘한 공기와 맞닿은 그 온기 사이에서 나는 잠시나마 안도와 평화를 느꼈다.


가을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 말 없이, 흔들림 없이, 그저 곁에 머무르다가 내가 그 존재를 알아챌 즈음에는 이미 내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계절과 함께 몸살을 앓듯 깊은 고통과 변화를 견디며 나 자신과 마주한다. 변화와 성장의 아픔 속에서, 상처와 치유가 반복되는 그 순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또 다른 나로 다시 쓰여 간다. 마치 낡은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맞이하듯, 서서히 내면의 풍경이 새롭게 채색되어 가는 과정이다.


고요한 아침, 매미의 조용한 방문이 하루를 열었지만, 입추의 이름 아래서도 여름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그 뜨거움은 여전히 내 마음 깊숙이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아팠을, 아팠던, 그럼에도 아픈 가을을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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