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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어서 와, 가을

by 그레이스


여름의 끝자락,
짙푸른 잎들은 더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하늘에 걸린 뭉게구름 또한 스스로의 존재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듯 묵직하게 흔들렸다.


여리게 시작해 제 몫을 다해온 시간 앞에서, 이 계절은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이른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먼저 가을을 불러왔다. 마음 한켠에는 누군가와 다정히 속삭이고 싶은 작은 바람이 스쳐갔다. 풍경과 음악, 존재의 무게와 여린 흔적, 외로움과 다정함이 얽혀 가슴은 알 수 없는 울렁임으로 흔들렸다. 몸과 마음 어딘가에서 일어난 미세한 떨림 덕분에, 오늘 하루는 유난히 고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품게 되었다.


가을이면, 나는 종종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에 눈을 뜨고,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며 음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 오는 날 곁을 지키던 노래와 계절의 빛깔을 따라 찾게 되는 음악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이란 언제나 선택과 해석으로 직조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몇 해의 가을은 유난히 잔인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낙엽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고, 그 아픔은 ‘사무치다’라는 말조차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 가을에는, 그 모든 무게와 여린 흔적이 한데 겹쳐, 담담히 아름다움을 느끼고 조용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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