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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저녁

바타비아가 들어간 소고기 김밥

by 그레이스



평일 저녁은 늘 가볍게 먹는 편이다. 하루의 무게가 저녁상까지 이어지면, 몸도 마음도 금세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쉬면서,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김밥은 내게 가장 손쉬운 저녁의 안식이다.


우리 집 김밥은 유별나게 소박하다. 화려한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정통 김밥보다는, 단무지와 주재료를 듬뿍 넣어 감은 단순한 김밥. 군더더기 없는 맛. 어쩌면 그것이 김밥의 본래 맛일지도 모르겠다. 오이 한 줄, 시금치 몇 잎이 들어가면 그 초록빛만으로도 김밥은 생기를 얻는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초록을 만났다. 바타비아라는 이름의 채소였다. 낯선 이름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상추와 양상추의 중간쯤 된 품종이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막상 맛을 보니 순한 상추 맛. 특별하다기보다는 익숙한 맛인데, 그 연둣빛이 유난히 싱그럽다. 손끝에 닿는 살짝 주름진 잎맥, 씹을 때 입 안에 퍼지는 여린 결이 오래 남는다. 김밥 속에 넣어 보니 작은 들판이 한 줄기 들어앉은 듯 환했다.


생각해 보면 김밥은 늘 익숙한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 낯선 것이 하나 들어오면 풍경이 달라진다. 바타비아는 그저 상추와 닮은 맛이었지만, 이름만으로도 이국의 바람을 불러왔다. 연둣빛 한 잎이 김밥을 조금 다른 음식으로 바꾸고, 그 작은 변주는 나의 저녁을 낯설고도 새롭게 만들었다.


익숙한 것에 새로운 것을 얹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의 맛을 지켜가는 방법이 아닐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저녁을 먹더라도, 연둣빛 한 장이 더해질 때 오늘은 어제와는 조금 다른 저녁이 된다.

연둣빛 한 잎이 김밥을 바꾸듯, 작은 변화 하나가 삶의 하루를 새롭게 물들이고, 평범한 시간을 다른 빛으로 환하게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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