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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여백

작은 눈호강의 순간

by 그레이스



주말은 늘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리는 신비 같다. 하고 싶던 일은 끝내 다 하지 못한 채, 아쉬움만 길게 남는다. 대여한 책은 서문에서 멈춘 채 책상 위에 누워 있고,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하루는 어느새 기울어 간다.


아침엔 밥을 챙겨 먹었기에, 점심은 평소 아침에 늘 먹던 빵으로 대신했다. 마치 시간의 자리를 바꿔 놓은 듯한 식사였다. 책상 앞에 앉아 미리 골라 두었던 영화를 틀고, 잠시나마 느긋한 시간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 보았다. 그 순간이야말로 작은 눈호강의 여백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동료들과 발걸음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느리거나 멀리서 들려오더라도.” 소로는 산업화의 속도에 떠밀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자연 속에서 단순한 삶을 실험했다. 월든 호숫가 숲 속 오두막에서 보낸 그의 2년여는, 결국 자기 속도로 사는 것이 삶을 얼마나 충만하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잠시 다른 북소리를 따라 걷고 싶다. 주말의 짧은 여백, 느리게 흐르는 영화의 한 장면, 빵 한 조각으로 대신한 점심 식사. 그 속에서 나는 소로가 말한 자기 속도를 경험하며, 그것이 주는 잔잔한 자유와 안도감을 배운다. 주말은 그렇게 스쳐 지나가지만, 잠깐의 여백이 남긴 여운만은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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