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선물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찬란하게 빛났던 순간의 기억도, 눈물이 앞을 가렸던 아픈 기억도, 차라리 떠오르지 않았으면 싶은 기억도 있다. 어떤 기억은 매일같이 불러내고 싶지만, 또 어떤 기억은 내 안에서 지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지우고 싶은 기억조차도 결국은 나를 빚어온 흔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의 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 기억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져 하루하루가 짐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여전히 그 기억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임을 깨달았다. 덕분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세상에는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알츠하이머나 루이소체 치매 같은 기억장애 환자들은 소중한 이름 하나, 따뜻했던 순간 하나조차 점점 손에서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조금 전 나눈 대화도, 오래 함께한 얼굴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 그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이다. 우리가 괴로워하며 지우고 싶다고 말하는 기억조차, 그들에게는 간절히 붙잡고 싶은 보물 같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픈 기억은 꼭 불행만을 남기는 걸까.
괴롭고 지우고 싶었던 기억도 결국은 삶을 더 깊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 기억이 있었기에 내가 단단해졌고,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성장했음을 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행위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기억은 오늘을 버티게 하고, 또 어떤 기억은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잊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을 품고, 기억하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이들의 슬픔을 함께 목격한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오늘의 기억에 매여 고뇌하기보다,
모든 일이 결국은 내가 순간을 더 잘 살아내는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준다면, 내일은 더 희망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