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한 대로

by 그레이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순간, 열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았다. 미열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보내기엔 곧 내려갈 것 같지 않은 열이었다. 아이는 등교하겠다고 했고, 나는 오늘은 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둔 아이에게 이 결정이 가볍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이미 학기 마무리를 향해 걷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고, 건강 앞에서 그 속도를 조절해 주는 일은 아직 어른의 몫이었다.


집에 있던 종합감기약을 먹이고 출근했다가 일을 서둘러 마치고 돌아오니 정오였다. 아이는 많이 아프다는 말 대신 나를 보자마자 안아 달라고 했다. 나는 외투를 벗고 손부터 씻고, 열을 재본 뒤에야 아이를 안아 주었다. 밖에 다녀온 사람의 순서였다. 그 짧은 몇 분이 아이에게는 긴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의 등을 몇 번 더 토닥였다.


열은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식사를 거부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거리가 조금 있더라도 아기 때부터 다니던 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이동은 늘 침묵과 도착만 남긴다. 차 안에서 아이의 컨디션을 살피며, 답답한지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는 모습을 보니 운전을 조금 더 서두르게 되었다.


올해는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 한 달 전에는 A형, 이번에는 B형이었다. 잠깐의 망설임이 뒤늦게 생각으로 돌아왔다. 이 계절을 나는 조금 가볍게 건너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은 대개 지나간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주치의는 초기라 테스트기에 바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주 옅은 선 하나가 끝내 드러났다. B형 독감이었다.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이는 먹는 약 대신 한 번 겪어본 수액을 선택했다. 아픈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아이지만, 주사바늘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팔을 내민다. 그 작은 결심을 나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이틀 뒤 졸업식이 있다는 말을 아이는 잊지 않고 있었다. 몸은 아파도, 시간은 놓치지 않으려는 얼굴이었다.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니 졸업식 날 외식은 미루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예약한 대로 가족 식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특별한 날을 유독 의미 있게 보내려는 아이다.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그제야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하루가 비로소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플 때 지독하게 아파도 남아 있던 식욕처럼, 이 하루도 아이 안에서 너무 아픈 기억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다. 집에 가면 점심에 먹이려고 장본 재료로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 줄 생각을 하며, 그제야 나 역시 배고픔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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