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빈혈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나는 잘 먹지 못했고, 잘 자지 못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은 대개 소란스럽지 않아서, 나는 그것들을 여러 차례 지나쳤다. 정기검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야 비로소 확인한 것은, 몸이 이미 나를 몇 번이나 불러 세웠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는 더 잘 먹고, 더 잘 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다짐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시간은 늘 그렇듯, 몸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안으로 들어선다. 실습 학생들로 보이는 풋풋한 남녀가 복도를 지나간다. 단정하게 다려진 옷과 어깨에 얹힌 긴장. 아직 몸보다 마음이 먼저 이 공간에 들어와 있는 얼굴들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한때의 나를 떠올리려다 이내 그만둔다.
그중 한 실습생이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
그 짧은 순간, 내가 누구였을까.
너에게.
로비 한편에서는 병원 직원들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일하는 얼굴도, 웃는 얼굴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표정들. 기록이라기보다는 응시에 가까운 사진들 앞에서 발걸음이 늦춰진다. 여느 작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병원이 매일 만들어내는 수많은 표정들이, 이렇게 조용히 걸려 있다.
혈액을 채취한 뒤 대기 시간 동안 머무를 곳을 찾는다. 지하에서 지상 몇 층까지 오르내리며 깨닫는 것은 단순하다. 이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고, 그만큼 아픔도 많다는 사실. 조용히 앉아 있을 자리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병원은 머무는 장소라기보다, 통과해야 하는 공간에 가깝다.
카페와 로비, 복도마다 발걸음이 이어진다. 결국 한참을 걷다 로비의 의자에 앉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기 번호 호출 소리, 피로가 드러난 의료진의 얼굴, 근심이 겹겹이 내려앉은 환자와 가족들의 표정,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멈추지 않는 시스템. 이 안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쉬고 있지 않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