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시간의 통과
바쁠 때면 이상하게도 한식이 먼저 떠올랐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고 김치볶음밥 같은 것들이다.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닌데, 그조차 해 먹지 못한 채 하루가 넘어가곤 했다. 늦은 밤이면 내일 아침엔 꼭 만들어 먹어야지 마음먹지만, 아침이 되면 아이들 등교 준비와 출근 준비로 숨이 가빠졌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고, 음식은 늘 생각으로만 남았다. 별것 아닌 음식을 며칠째 떠올리는 일이 반복됐다.
나물이나 채소비빔밥도 다르지 않았다. 시금치와 콩나물, 채 썬 당근을 하나씩 떠올리는 동안 이미 시간이 흘러갔다. 복잡한 과정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여유를 요구하는 음식들이었다. 주말마다 채소를 사 왔지만 다 먹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점점 덜 사고 덜 준비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잘 먹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였고,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는 일상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김밥만은 달랐다. 사 먹는 김밥이 유독 허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포장을 열었을 때 속이 듬성듬성 비어 있는 김밥을 마주하면, 허기보다 먼저 마음이 식었다. 잠깐 배를 채우는 음식이라 해도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걸까 싶었다. 맛있는 김밥집은 늘 멀었고, 결국 집에서 직접 말기 시작했다. 재료가 많지 않아도, 모양이 고르지 않아도, 적어도 속이 빠져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김밥은 그나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집밥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밥 하나를 싸는 일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재료 손질과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분명한 노동이었고, 나는 하루를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쓰며 살아왔다. 그 기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왔다. 잠이 적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결국은 내 몫의 속도로 하루를 버텨냈다. 그동안 가족들은 불만보다 협조를 먼저 내주었고, 말없이 그 시간을 함께 건너왔다. 요즘 들어 그 조용한 동행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진다.
최근 들어 생활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빵과 커피는 여전히 좋지만 주식에서 간식이 되었고, 채소를 다듬고 싱싱한 대파를 사 오는 일이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급히 끓이던 라면에 콩나물이나 숙주를 얹고, 대파를 송송 써는 일. 손이 아주 조금 더 가는 선택들이다. 그 사소한 수고가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아직도 가끔은 이 시간을 꼭 요리에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그래도 결국 손은 다시 집밥 쪽으로 향한다.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 선택들이 하루를 지탱한다. 가장 뒤로 미뤄두었던 일들이 생각보다 오래, 조용히 나를 받치고 있었다는 사실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