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비우는 주말

간단한 한 끼

by 그레이스


장을 보지 않은 채로 한 주를 넘겼다. 냉장고에는 이미 충분한 재료가 있었고,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해 온 쪽은 나였다. 장을 보고 나면 늘 신선한 것부터 손이 갔다. 그러는 사이 냉동실은 보관의 장소가 아니라 유예의 공간이 되었다. 쓰이지 않은 채 쌓여가는 것들. 이번 주말에는 그 질서를 잠시 바꾸기로 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남아 있는 재료들을 훑어본다. 새로운 조합을 궁리하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정리하기로 한다. 또띠아 피자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다. 아이들이 먹어본 적 있고, 잘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음식 선택의 기준은 늘 현재보다는 과거에 가깝다.


밥에 토마토소스를 섞고 싱싱한 대파를 썬다. 파는 다른 재료보다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다. 칼이 도마를 치는 소리, 조리되며 번지는 향. 그 냄새만으로도 한 끼의 윤곽이 먼저 그려진다. 치즈를 넉넉히 얹고 또띠아를 접는다. 조리라고 부르기엔 단순한 과정이지만, 그 단순함 덕분에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다.

접시에 담긴 음식 앞에서 아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말이 없다는 것은 종종 가장 분명한 반응이 된다. 접시는 비워지고, 나는 다시 냉장고를 연다. 줄어든 공간을 확인하는 일은 예상보다 정확한 만족을 남긴다. 무엇을 더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당분간은 이 상태로 충분하다는 감각이 남는다.


아이들의 먹거리를 만든다는 행위는 늘 두 방향을 향한다. 먹이기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냉장고를 정리하듯 하루를 정리하고,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간을 마무리한다. 남은 재료를 쓰는 일에는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안정이 따른다.


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굳이 감정을 명명하지 않는다.

하루는 무리 없이 지나고, 식탁은 비워졌다. 이 정도의 상태로 생활은 이어진다. 특별할 것 없는 방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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