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인 세상에서
중년에 접어드니 “교양”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몸에 밴 진중한 말투, 분위기를 아우르는 존재감, 경멸하지 않는 눈빛,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한 미소가 연상된다.
무엇보다도, 내가 정의하는 교양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현란한 지식도 아니요, 화려한 뒷배경도 아닌 “공감”이다. 슬피 우는 자 옆에서 떨구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친구를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철학자 샤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라고 했다.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 일평생 나를 제대로 알고 사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세상살이에, 타인의 존재는 짐수레다.
무심코 던진 말에 코브라처럼 독을 품은 반격, 물어본 적 없는 일에 대한 섣부른 충고, 숨 고르며 험산 준령을 넘어가는 이에게, 따뜻한 방에 배 깔고 누워 쏟아내는 타인의 한심한 조언은 지옥 불과 다름없다.
새벽부터 학교에서 시달리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아이들이 내게 온다. 오늘은 무어라 얘기하며 반길까. 학교는 어땠어? 점심은? 어머나! 왜 그랬을까! 이런!
감탄하고, 감동하고, 공감하려 애쓰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웃자고 한 농담 속에 행여나, 나만 살고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진 않았는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나는 한 번이라도 교양 있는 어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반문해 본다.
추신: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문 밖에서 찍은 노랗게 물든 단풍 사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