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음본능이다. 초등학교 때 생목으로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했다. 2학년 때부터 웅변을 한 이후로는 뱃속에서 끓여 올려 힘껏 지르는 샤우팅 창법이 더해져 우렁차기까지 했다.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날이면 으레껏 앞에 나가 노래 부르기 일쑤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비록 예선 탈락이라는 쓴 고배를 마시긴 했으나 분홍 정장을 입고 대학가요제 학교 예선을 치렀다. 곡을 써 준 친구에게 곡이 너무 촌스러웠다고 투정 댔더니, 친구는 내가 고음에서 삑사리가 났다며 나무랐다.
대학교 졸업하고 6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찾은 교회에서 멋져 보이는 형제가 성가대 하는 것을 보고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들고자 성가대에 자원했다. 희한하게도 뱃속에서 끌어올린 진성이 아닌 가성으로 그것도 4부 나눠서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깨너머로 얼추 배운 가성이 흥미로워질 무렵 나는 모든 찬양에 3도 올려 화음 넣기 시작했다!
한 번은 아는 동생을 교회로 전도해서 함께 예배드렸는데, 그때도 나는 찬양에 취해 3도를 올려 나름 화음을 넣고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하는 동생이 찬양예배 도중 나를 툭 치며 귀속말을 했다.
"언냐, 어디서 고양이가 울어?"
내 소리에 취한 상태로 유학을 갔다.
유학생 한인교회 성가대는 법학 전공하신 분이 지휘하셨는데 어느 시대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중세 비슷한 시기의 아주 절제된 미소년 소리의 찬양을 추구하셨다. 그리고, 지휘에 진심이셔서 소리가 이상하게 나오는 분은 입만 뻥끗하라고 주문 넣기도 하셨다.
예상했던 대로 나에게도 한 말씀하셨다. 고음본능인 나를 알토로 내려가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칭 "뮤지선"인 나는 알토로 "하향" 조정하면서까지 노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알토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나 홀로 빛나는 것을 즐겨하던 내게 알토는 존재 자체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절대 빛날 수 없는 중저음 영역이 그러하고, 저 세상 텐션으로 중무장해야만 낼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음은 언제나 새로웠다.
게다가 '알토'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장난 삼아 '알통'입니다! 하면서 알통 근육을 선보이는 썰렁한 아재 개그 소재이기도 한 알토!
7월 27일을 기점으로 꺾어진 백 살, 지천명, 5학년으로 진급했다. 백세 인생의 중간점을 이제 막 돌고 있다.
50세 이전의 삶은 나서기 좋아하는 빛나는 생목의 소프라노였다면 50세 이후의 삶은 빈 공간을 채워주며 곡 전체를 웅장하게 받쳐주는 알토였으면 한다.
드러나지 않으나, 없으면 허전한 알토. 솔로처럼 익숙하고 낭랑한 고음은 아니지만, 고음을 더욱 빛나게 뒤에서 받쳐주는 알토. 그렇다고 음을 아래로 깔고 아무 소리나 내면 안 되는 알토. 시종일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하는 알토. 위로는 소프라노, 아래로는 테너와 베이스의 그 중간 어드메에서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고 지켜내야 하는 알토.
남은 인생, 진정한 알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