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흔 즈음에

죽기 전 첫 키스? 이런 것 바라지 않습니다~!

by 서재진

2006년 9월 5일 한국을 떠나 9월 6일 새벽 4시에 미국 뉴욕주 이타카에 도착했다. 다음 날 9월 7일 우연히 캠퍼스를 거닐다 소개를 받은 L.A. 청년의 이름은 나와 같은 성인 서 씨였다. 그래서, 은정이한테 어디 서 씨인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동성동본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가진 것이 시간 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학기 시작으로 분주한 은정이는 L.A. 총각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 주소만을 달랑 알려준 체, 어디 서 씨인지 도대체 알려주지 않았다.


평생 짝사랑만 해온 나는 사실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웅변에만 익숙해서, 내숭 떠는 법이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40일 무결석 새벽기도를 드리는 L.A. 청년에게 싸이월드 홈피 쪽지로 이은정이라는 동생의 소개로 홈피를 알게 되었는데, 혹시 어디 서 씨냐고 물었다.


굉장히 사무적이고, 냉랭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정 씨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분은 나를 알죠? 암튼 저는 부여 서 씨입니다. 코넬이면 뉴욕주에 살고 있나 보죠? 전 L.A. 에 있습니다. -서승훈-”


찬바람이 쌩하고 돌아도 열두 바퀴는 넘게 돌 것 같은 쪽지에 정이 뚝 떨어졌다. 쪽지에 이름이 버젓이 [서승훈]이라고 나오는데, 나하고는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음을 강하게 피력하는 마지막 서명 –서승훈-에 실망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내 비록 지금은 [골드 미스]이다만,


‘하나님, 저는 죽기 전 첫 키스? 이런 것 바라지 않습니다.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 손 한 번만이라도 잡고, 좋아서 덜덜덜 떨다가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순결한 여자인데, L.A. 새벽기도 하는 청년의 어투는 마치 내가 이 분을 점찍어두고 경박하게 집적대는 여인네를 대하는 듯하다.


바로 은정이에게 달려가 중간에 애쓰지 말라고, 내 짝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은정이는 성급한 나를 나무랐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고. 언니, 연애는 남자가 먼저 움직여줘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야, 너도 나와 같은 처지의 노처녀 아니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으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참았다.


어차피 한국을 떠나올 때 배우자나 결혼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왔으니까, 이 일은 접어야지 하던 찰나에, 그나마 첫 쪽지보다 부드러운 어투의, 약간의 관심이 표명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두 번째 쪽지가 왔다.


“어제 주일날 청년부에 아는 형으로부터 이은정(크리스틴)이 누군지 알았습니다. 예전 청년부 나왔던 자매의 아는 동생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론 한 번 봤다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네요. 암튼 코넬에서 공부하는 것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디 서 씨인지 저번에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알려주세요. -서승훈-”


드디어 내 인생에도 한줄기 쪽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인가!


브라보! 파란만장한 내 인생이여!


마흔 즈음에 2.jpg


작가의 이전글[1] 마흔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