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지자랑’일세!

2/7/2018

by 서재진

중학교 1학년 김주연 담임선생님께서는 수학을 가르치셨다. 사각형의 각진 두꺼운 안경을 쓰셨는데, 당시 반장이었던 나를 끔찍이도 아껴 주셨다. 수업이 끝나면 반청소를 목이 쉬도록 지도했다. 오늘만, 오빠들 만나서 청소를 빼 달라는 친구들을 하루 눈감아 주는 대신 다음날 청소 부반장으로 둔갑시켜 1학년 7반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반정치’가 내 체질에 딱 맞았다.


반평균을 올리려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85점에서 90점을 받게 하는 것보다 반 전체 성적을 끌어내리는 하위권 친구들을 방과 후 족집게 과외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까지 터득해 가면서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각별한 담임 선생님의 사랑이 있었다.


청소 다 마치고 점검을 받으러 교무실에 가면 새마을 어머니회의에서 남겨두신 떡과 교사용으로 나온 ‘이달의 학습’, ‘다달의 학습’지 1학년 부분을 따로 잘라서 내 손에 쥐어 주시던 수학 담임 선생님의 각별에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의 수학 성적은 겸손하기 그지없었다. 중학교 1학년 3월 말 고사에서 수학을 80점 맞았다. 25문제 4점짜리를 5개 틀렸으니, 20점이 깎여 80점이 된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내 욕을 하는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반장, 저렇게 잘난 체하는데 반에서 10등 안에도 못 든데.”


“야, 3월 시험에서 60명 중 15명이 100점을 받았는데 반장은 80점 이라며? 평균은 넘은 거냐?”


그것도 부족해서, ‘진현숙’이라는 친구 등수가 잘못 계산돼서 5등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12등인데, 13등으로 더 내려가는구나. 13이라는 숫자는 원래 안 좋아하는데 내 등수가 될 줄이야!


첫 번째 수학 시험을 기대 이하로 치른 이후, 4월 말도, 5월 고사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3월 성적표를 주시던 담임 선생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사각형으로 각이 진 두꺼운 금테 안경 너머로 무섭고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셨다. 그리곤, 아무 말없이 내 성적표를 공중 부양시키셨다. 나는 반친구들이 볼 새라 뛰어올라 잡아들고 말없이 내 자리로 들어갔다. 아이들 앞에서 참았던 울음은 집에 오자마자 터졌다. 막내인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엄마는 괜찮다며, 고단해서 오줌 싸던 네가 혼자 산 고개 넘어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 타고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대견하다 하셨다. 내가 울다 지쳐 잠든 사이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를 붙잡고, 이를 어떡하면 좋으냐고 언니인 네가 가르쳐라 당부하셨다는 일화는 내가 대학 가고 나서야 들었다!


그날 이후로 수학은 내게 아킬레스건처럼 내 발목을 잡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째려보시며 성적표를 던지셨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어떻게 네가 내 기대에 이렇게 부흥하지 못하는 거냐?’였다. 내가 잘 못해서 속상하긴 했지만, 선생님께 야속한 감정은 없었다. 말 그대로 나를 정말 아껴 주셨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갈 학생 뽑는 예비 시험을 방학 전에 보았는데, 당연히 나는 탈락했다. 수학 경시대회 담당이셨던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셔서 5명을 뽑는데, 나는 6번째 깍두기로 여름에 나와서 수학 경시대회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수학 공부하라고 권면해 주셨다. 마침 시골에서 할 것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매일 도시락 싸서 학교 뒤편 개울가에 발 담그고 수학공부를 했다.


수학 경시대회 준비반의 하루는 이러하다. 아침에 9시까지 등교하면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5명씩 총 15명이 모여 칠판에 적혀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푼다. 점심시간 때 선생님께서 잠깐 들르셔서 정답 확인을 하신 후, 답을 찾지 못하면 오후 내내 같은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한다. 간간히 중학교 3학년 언니가 풀어서 우리들에게 설명해주고 나면 귀가 시간이다.


두 분의 수학 선생님께서 수학 경시대회 반을 맡아서 지도해 주셨는데, 다른 한 분은 총각이셨던 ‘김상덕’ 수학 선생님이셨다. 잠자리 안경을 쓰신 선생님은 영원한 우리들의 오빠 가수 ‘전영록’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 이후로 선생님만 지나가시면 갑자기 요조숙녀로 돌변하는 이상 야릇한 증상까지 보이게 되었다.


말이 공부이지, 장난도 많이 치고 공부 분위기 흐려 놓기 일쑤였다. 30문제 중에서 다른 아이들 12개 틀릴 때 나는 12개 맞는데도 전혀 기죽지 않고 장난쳤다. 뒷산에서 벌레 잡아 쿠킹 포일에 담아 놓고, 책상 밑에 놓고 아이들 놀라게 하고, 문 뒤에 숨었다가 웅변으로 다져진 목소리로 소리 지른 뒤 도망가고, 통제불능이었다.


그러던 중, 대회를 앞두고 수학 경시대회 준비하던 친구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포기해서, 깍두기였던 내가 출전한다는 비보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도 괜찮은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게다가, 여름 내내 문제의식 없이 놀던 내가 수학 경시대회 학교 대표로 나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깊은 회한이 들었다. 시험 보기 하루 전날도, 저녁 먹고 장난을 치고 있는데, 어린 소녀의 감수성을 자극하신 ‘전영록’ 닮은 총각 수학선생님께서 나를 과학실로 호출하셨다. 별 상상을 다하며 간 그곳에서 난 내 귀를 의심할 말을 듣고 말았다.


“야, 서재진 인마. 안양시에서 너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하는 사람은 안 나올 거야. 그러니까, 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잘해. 알았어?”


지금 내가 무슨 저주의 말을 들은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아무리 장난이 심하고 수학적으로 모자라기로 서니 이렇게 심한 말을 들을 정도였나?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수학 경시대회 당일 날, 안양서 여자 중학교에서 걸어 내려와서 벽산 아파트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조금 남겼다. 그릇 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로 찰지게 먹는 내가 밥을 남길 정도로 각오를 새롭게 하고, 그 비장함을 무기로 치른 수학 경시대회 성적은 그야말로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웠다.


안양시에서 100점이 두 명 나왔는데, 모두 안양 서 여자 중학교 출신이었다. 한 명은 1학년 7반 반장이었던 나와, 다른 한 명은 1학년 7반 부반장이었던 ‘구정희’. 내가 100점 받은 사실을 의심했던 수학 선생님께서는 교육청에 전화 걸으셔서 재차 이름 확인을 하셨다는 후문까지 전해 들었다. '서재진 인마' 하셨던 총각 선생님께서도 아빠 미소를 지으시며 말없이 머리를 쓰다 듬어주셨다.


기적 같은 일이 있고 난 후, 내 꿈은 수학교사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에 심취해서 문과생인 언니 수학을 도와주면서 숫자 하나로 소통이 가능한 수학은 철학이다라고 말했더니,


"야, 50점이나 넘게 받으면서 철학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네 말을 믿지!"


라며 피를 나눈 친언니가 내게 촌철살인을 날렸다.


아이들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나 지금은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수학을 지도하는 선생이 되었다.


2월 7일 Fairfax County 모든 공립학교가 기상악화로 2시간 늦게 시작해서 오늘 치러지기로 한 미국 수학 경시대회 AMC 10/12 시험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2월 15일로 연기될지도 모를 수학 경시대회를 앞두고 긴장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경시 대회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한 것과는 별개로 내재된 잠재력이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짝사랑하던 총각 선생님의 일침이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어서 잠자고 있던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번 수학 경시대회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어느 누구를 통해서라도 본인의 잠재력이 십분 발휘되는 황금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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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누나 글을 읽고 보면 결론이 ‘지자랑’이야.라고 읊조릴 동생들의 얼굴이 뇌리를 마구 스치고 지나가는 새벽이다. 부디 용서하시길… 그리고, 사진은 동네 어르신들이 남자인 줄 아시고 '잘 생겼다'라고 하셨던 중 3 졸업사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지자랑’일세!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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