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4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양재동 KFC 매장 직원이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로고가 박힌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서빙을 했다. 끈적한 콜라를 쏟는 손님이 있으면 화들짝 놀라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핫크리스피' 닭고기 주문한 손님을 긴장하며 예의주시했다. 아사삭 닭다리를 한입 물어뜯을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부스러기가 얄미웠다. 어찌나 고단했던지 일 시작한 지 3일 만에 코피를 쏟았다. 지점장님을 찾아가 힘에 부쳐 못하겠노라고, 시급은 안 주셔도 좋으니 실내화만 찾아가게 해달라고 울먹였다.
그 이후로 변변치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한 언니는 주변에서 소문난 과외 선생이었다. 1~2년 언니가 길을 잘 닦아 놓고 학부형님들께 내 소개를 해줘서 겨우 한 명씩 가르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어쩌면 유일한 무기인 "친화력"으로 아이들에게 겁 없이 다가갔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을 명동과 종로로 데려가서 밥 사주고, 대형 서점에 들러 문구용품 사주고, 노래방에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 해소시켜 줬다. 그러면 약발이 한 두 달은 간다. 책 한 권을 숙제로 내줘도 다 해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젊은 혈기가 하늘을 찌를 무렵, 숙제 안 해오는 학생들은 엄하게 다스렸다.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밀린 숙제를 다 할 때까지 밤을 새더라도 네 옆에 있겠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쏟으며 일부러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구몬 선생님은 5분을 가르쳐도 정말 재미있는데..."
첫 과외는 고등학교 선생님 조카였다. 웅변으로 다져진 목청으로 쩌렁쩌렁 과하게 소리를 질러가며 가르치는데, 내가 가르칠 때마다 앞 집 창문이 열린다. 몇 달 동안 내가 가르치는 소리를 엿듣고 계셨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막내딸을 소개받아 가르치게 되었고, 사촌, 이종 사촌을 소개받아, 사당, 산본, 일산, 잠실을 찍어가며 가르쳤다.
부족한 실력과 학벌은 '열심'으로 덮었다. 원래 주 2회 수업이면 보충하러 한 번은 더 갔고, 2시간 공부는 3시간을 넘기가 일쑤였다. 간식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혈당이 올라가서 더 가르쳤다.
그렇게 중 1학년때부터 맡은 아이들을 6년 동안 대학 들어갈 때까지 가르쳤는데,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너 재수할래?"
했더니,
"선생님 맞아요?"
하고 웃으며 되묻는다.
하루는 숙제를 안 해온 준희를 혼냈더니, 두두둑 굵은 눈물을 쏟는다. 달래려고 하다가 작심하고 나도 따라 울었다.
"나도, 대문 밖을 나가면 귀한 막내딸이고 학생이야. 엉엉엉~"
그러자 준희가 울음을 멈추고 휴지를 건네주며 나를 위로한다.
"선생님, 이걸로 눈물 닦으세요..."
아이들 덕분에 대학생활 할 수 있었고, 유학 준비에 필요한 영어 학원 다닐 수 있었으며, 수영강습받아 살을 뺄 수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유학 나올 수 있었고, 결혼해서 먹고살 수 있었고, 비싼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드니 숙제 못해도 이쁘고, 잠 설치고 일어나 미처 떼지 못한 눈곱도 사랑스럽다. 방금 전에 일어나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뻗은 머리도 귀엽고, 안경 도수가 안 맞아 부호를 잘못 봐서 답을 틀렸다고 둘러대는 변명도 이쁘기만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신없는 요즈음, 게다가 7월 4일 독립기념일 휴일에 아침부터 시험을 보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참 고맙다.
공부로 더운 여름, 코로나를 이겨내자꾸나~!라고 말하면 오버겠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다시 한번 일구어보자!
아가들 파이팅!
2020년 7월 4일
추신: 2020년 7월 4일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 게다가 미국 독립 기념일에 미국 수능 모의고사를 치르는 학생들. 지금은 어엿한 대학교 졸업반이다. 취업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할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