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5일 한국을 다시 떠났다. 입학 허가서도 없이 무작정 짐을 쌌다.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안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참으로 많이 울었다. 그날에 쓴 일기를 읽는데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다. 어렸을 때 사 남매가 한 상에 둘러 밥을 먹다가도 장난기 많은 큰 오빠가
“우리 막내 우는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밥 먹다가 왜 울어? 그렇지 막내야? 어, 근데 진짜 우는 것 같은데, 어 운다 운다아~”
그러면 갑자기 눈물에 걸그렁했다.
“왜 그래, 나 밥 잘 먹고 있는 데에~~~ 어어어~”
눈물을 뒤로하고 제2의 고향인 Ithaca, New York에 새벽 4시에 도착해서 교회 근처 Hillside Inn에 짐을 풀고 그 길로 달려 새벽 예배에 나갔다. 새벽 내음, 익숙한 Anabel Taylor Hall의 은은한 불빛, 앞을 못 보시지만 스티브 윈더보다 더 천재 같은 피아노 반주로 찬양하시는 목사님, 변한 것이 없다. 나만 달라져 있는 듯하다.
그날 주시는 말씀은 꿈과 비전의 사람들 시리즈로 느헤미야였고, 찬양은 542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소서’였다. 또 끄억끄억 눈물이 솟구쳤다.
난 진정 믿음의 사람이란 말인가? 6개월 관광 비자인 줄도 모르고, 핸드폰은 2년 계약을 하고, 아파트는 1년 계약을 도착하는 그날 다 체결하고, 다시 숙소에서 하룻밤을 더 청한 뒤 새벽 예배 후에 택시를 불러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마음을 잡지 못해 캠퍼스를 갈지 (之)로 방황하는 와중에 L.A. 총각을 소개받아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이야~!
L.A. 아리랑 시티콤을 보던 내가 L.A. 아줌마가 되다니,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남편은 해어젤로 반듯하게 2:8 가리마를 하고 은행에 출근하면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여보, 우리 저녁 때는 비빔국수를 해서 먹을까?”
이 청년은 필시 식품영양학과 출신 대한민국 공인 영양사 자격증을 소지한 내가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아는’ 본인의 배우자 기도 제목에 합했을 것이라 과신하는 듯하다. 없는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비빔국수를 준비해 놓고 퇴근한 남편을 맞이했다.
기대에 부풀어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뜬 남편의 독백을 듣는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량이 작은 어린 왕자의 속삭임을 왜 내 밝은 귀는 찰떡같이 알아 들은 것인가?
‘속았다…’
서로를 매혹시켰던 콩깍지는 그렇게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추신: 2006년 9월 5일 한국을 떠나올 때 울먹이며 썼던 일기장과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위 아래 하얀색 밀집모자까지 쓰며 과하게 포즈를 취했던 ‘로또 당첨 부부’같은 사진도 함께 올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