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강릉은 쨉도 안된다!

by 서재진

온라인 싸이월드 쪽지로 배우자 이상형이라는 고백을 받고, 오프라인으로 만나 확인을 했으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동영상을 찍어서 인사를 드렸다. 때는 바야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라는 추석이었다. 한국에서 명절을 지내고 계신 가족들에게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온 가족이 모여 기립박수를 했단다. 우리 막내, 드디어 가는구나! 환호성을 지르면서!


일은 급 물살을 타고, 6월에 L.A. 총각 치아 교정 푸는 다음 날 한국에 들어가 약혼식을 올리고, 8월 L.A. 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빠께 한국에 친인척과 지인들이 많이 계신데 막내인 내가 미국에서 결혼을 올려도 괜찮은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아버님 왈~


“걱정 마, 온라인 뱅킹이 있잖아! 벌써 번호 다 뿌렸어!”


그렇다, 나는 이런 분의 딸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약혼식을 마치고, 8월 결혼식 준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만 오시고, 형제들은 비행기 값을 내 결혼식 부조금으로 선뜻 내놓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친언니가 강릉 출신 형부를 만나 결혼할 때 부모님께서는 시댁이 멀어서 큰 일이라며 걱정하셨다. 한국에서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엘에이 공항에 도착하시면서 우리 친정어머님 왈,


“얘, 강릉은 쨉도 안된다!, 너무 멀어서 중간에 토할 뻔했다.”


하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결혼식 바로 전날 이제는 남편이 될 L.A. 총각이 1년에 걸쳐 준비한 국제재무분석가(The Chartered Financial Analyst® (CFA)) 2차 시험 결과가 나왔다. 물론 불합격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레 괜찮냐고 물었다. 원래 순수하고 여린 성품의 어린 왕자이신 지라, 다음날 신랑 입장하는데 행여나 의기소침해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건만, 이 모든 것은 기우로 판명 났다.


“괜찮아, 결혼하니까!”


이렇게 당차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결혼식 당일에 하객들 앞에서 고백하는 결혼 서약서 문법과 고등학교 때 이민 와서 어색할 지도 모르는 표현은 알아서 손을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그때의 고백을 되새겨 본다.


결혼서약 by 서승훈


동부에 있던 당신과 서부에 있던 내가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적입니다. 교회 동생을 통해 소개받고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메시지만으로도 정말 당신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배우자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미국에 다시 들어오고 동부를 가로질러 서부 LA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결혼 준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또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명랑 쾌활하고 옆에서 종달새처럼 지루하지 않게 장난쳐주는, 나에게 항상 기쁨이 되는 당신과 평생 함께 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재미있고 호탕할 뿐 아니라 삶의 깊은 부분까지 나눌 수 있게 해주는 당신의 대화술은 나의 부족한 면을 메꿔주었습니다. 모든 것 섬세하고 정확하게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세워주며 격려하는 동반자가 됩시다. 함께 도우며 멋지게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향해 꾸준히 나아갑시다. 매일매일 기대 되고, 설레는 밸런타인데이 같은 하루하루를 만들어 갈수록 노력할 것을 서약합니다.


항상 우리의 삶과 함께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해요.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며 당신 곁을 지키겠습니다.



결혼서약 by 서재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만 생길 것 같은 꿈같은 일들이 제게도 생겼어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포기했던 것이 딱 하나 있었어요. 바로 배우자였어요.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으니, 한 가지는 내려놓습니다 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속으로는 많이 울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런 제 모습이 안쓰러우셨나 봐요.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깊은 외로움을 채워줄 당신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단 하루라도 좋으니, 기쁜 일이 있건, 슬픈 일이 있건, 감사의 기도 제목이 있건, 곤경에 처해 있을 때라도 새벽에 손잡고 나가 기도하는 것을 사모하는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신실하시고 정확하신 하나님께서 신음하듯 내뱉은 말 토시하나까지 다 맞는 당신을 허락해 주셨어요.


기도 응답 대로 믿음의 가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를 통해 어떻게 역사하실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도 많고, 고민해야 할 일도 많겠지만 우리 둘 사이에 하나님께서 중재자 되어 주시니 전 아무 걱정 없어요.


주님께서 주인 되신 우리 가정에 당신은 머리가 되어주세요. 저는 부드러운 목이 될게요.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이라고 고백하며 살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당신 사랑해요. 지금보다 더욱더 많이 사랑할게요. [2007년 8월 18일 ]


추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으니 손발이 오글오글 합니다~! 이제 다 이루었노라는 표정의 L.A. 총각과 조신한 버전의 제가 손을 올리고 결혼 서약하는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마흔 즈음에 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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