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거짓말. 우리 여보 장난꾸러기!

by 서재진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함께 살고 싶었다. 비가 새는 처마 밑에서도 책 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곳간에 쌀이 부족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소개받은 L.A. 총각은 훤한 이마에 2:8 가르마를 자랑하는 은행장님 같아서 망설였다. 난 공부를 잘 못하지만, 공부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과연 이 조합이 잘 맞을 것인가 묻고 또 물었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잘하고 싶어 하나 공부 안 하는 나를, 태어나면서부터 공부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게 해 주셨다.


은행을 그만 두자 마자, 결혼식 바로 전날 떨어졌다고 발표 났던 CFA (Chartered Financial Analyst) Level II 국제 재무 분석가 2차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경영학 석사 (MBA)도 직장 다니면서 버겁게 했는데, 공부만 집중해서 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주일 예배 후 청년부 모임 중에 학생 비자로 와서 일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내가 물었다.


“왜 학생 비자인데 공부 안 해?”


“누나, 솔직히 공부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형편이 안되니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죠.”


속사정을 듣고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 카페로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교회 전도사님 내외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국에서 잠깐 가르쳤던 토플 공부를 도와줬다. 매일 카페에 출석 도장을 찍으며 동생들 공부를 봐주고 있는데, 카페 사장님 안주인 되시는 전도사님께서 운영하는 SAT/ACT 학원 강사 필요하다는 말에 ‘카페 죽순이’였던 내가 운 좋게 발탁된 것이 “Suh Academy”시초다.


이 일로 다른 이를 돕게 하시고, 내 앞 길도 열어 주시고, 더불어 먹고살게도 하시니 정말 감사하다.


해마다 6월 초에 치르는 CFA 2차 시험에 꼭 내가 운전해서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즐겨 탔고, 유학생일 때는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녀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자 홍길동’이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이번만큼은 꼭 운전면허를 따리라 다짐했다.


필기시험은 아주 가볍게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바로 광야로 입문했다. 실기 시험 첫 번째는 운전학교 교장선생님의 운동신경이 남 다르다는 칭찬이 무색하게 깜빡이를 손으로 꺼서 떨어지고, 두 번째는 차선 변경할 때 고개를 90도가 아닌 70도로 돌려서 떨어지고, 세 번째는 L.A. 다운타운 운전 면허장 주차장에서 2미터도 못 가고 떨어졌다.


"Go around that car"


이라는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앞 차 간격을 좁혀 가다가 옆자리에 앉은 시험관이 히스테리 섞인 목소리로


“Almost hit the car. You failed!”


하며 떨어뜨렸다.


속상해서 남편한테 전화했다.


“여보, 나 운전면허 시험 또 떨어졌어.”


그러자, 천진난만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거짓말. 우리 여보 장난꾸러기!”


일상이 개그인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뿔싸! 이를 어쩐다!


마흔즈음에 16.jpg

추신: 눈 뜨자마자 열공하는 사진을 올립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여보는 머리가 좋은 가봐.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민 왔는데 고등학교 차석으로 졸업하다니 엄청나네! 과외받았어? 아님, 책은 뭘 봤어? 문제집은 몇 권 풀었어?”


한 참을 진지하게 생각한 뒤 남편이 답을 합니다.


“선생님이 써주신 노트와 교과서만 봤어. 사실 난 노력형이거든.”


사방에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여보,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은 ‘겸손’으로 정했어! , 모든 얘기의 결론이 ‘지자랑’인 나부터 겸손하고, 여보도 더불어 겸손한 걸로!”


시작부터 ‘자랑질’해서 죄송합니다. 멋지게 한주 마무리하시길, 만물이 소생하는 3월 중순 싱그러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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