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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forme Nov 25. 2024

난 11월이면 김장 수험생이었다.

온 가족이  긴장 속에 수능 보듯 치르는 김장

난 결혼하면서 김장을 경험했다.

우리 집은 김치를 사 먹었고 많이 먹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니 김치를 엄청 먹는 집이었다.


김장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시집을 갔는데 매년 김장으로 난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먼저 결혼을 하고 1년 반 정도 있다가 아주버님이 결혼하면서 김장을 안 한다고 하던 말이 다시 바뀌었다.


결혼하고부터 고춧가루를 조금씩 필요할 때 주길래 난 주는대로 받아서 요리할 때 사용했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고춧가루를 보내 줘서 그냥 받았더니 고춧가루 값도 안 준다고 뭐라고 하는 거다. 난 고춧가루가 얼마인지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햇고춧가루를 김장까지 생각해서 1년 치를 기본 20근 이상을 사는 것이었다. 작년 고춧가루가 많이 남아 있어도 무조건 20근 이상을 샀다. 그녀가 그렇게 많이 사는지도 몰랐다.  항상 얼마나 살건지에 대해 묻지도 않고 벌써 주문을 하고는 얼마가 들었다고만 했다. 처음에 형님이 오기 전까지 고춧가루 값을 줘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고춧가루값 안 준다고 뭐라 해서 그다음 해부터는 15만 원 정도 보탠 것 같다. 형님도 따로 그 정도 보탰다.


그녀의 항상 하는 레퍼토리를 보면

" 김치 나는 거의 먹지도 않는데 다 김치해서 너네 가져주니 너네가 다 먹는 거야."  


고춧가루값은 그렇게 보태고 김장 때 장 보는 것도 우리가 내니 우리가 돈 주고 사 먹는 거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댁인 나는 1년에 하루 하는 김장이라 사실 재료가 뭐가 필요한지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몰랐다.  주위의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함께 김장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이제 네가 해봐라'라고 얘기를 들어본 사람은 없었다.


아주버님이 결혼하고 형님까지 생기니 안 한다던 김장은 한해도 빠지지 않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장 전부터 계속 투덜투덜했다.


" 언제 너네가 김장해서 해주는 김치 먹어보냐 "


결혼해서 몇 번 해보지도 않은 김장을 자꾸 며느리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반찬도, 김치도 다 자기가 한 게 제일 맛있다고 하는 그녀이다.  새댁이라 반찬도 맛있게 못하는 나한테  '자기는 맨날 반찬해 주는데 며느리는 왜 안해주냐' 고 해서 그녀가 아프다고 할때는 반찬을 해서 보내주었다. 반찬을 사는것도 싫어했다. 내가 해주는 반찬을 원했다.  하지만  나중에 가보면  내 반찬은 몇 주간 냉장고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왜 잘하지도 못하는 우리가 김장을 자기 감독하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줄 알기를 바라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자기가 한 김치 먹을거면서 말이다. 그냥 심보가 그런 거지 뭐


매년 김장을 같이한 아들도 재료부터 다 알아서 해보라 하면 못할 텐데 자꾸 며느리한테 요구한다. 항상 시작은 '이번에는 니들이 해봐 ~' 로 투덜투덜하고는  배추 절이는 것도 자기가 다 했다.


한 번은 첫째가 돌이 안되어 못 걸을 때였다. 시댁에서 주말에 김장을 하기로 했는데 그녀는 우리를 안 시키려고 나름 배려한다며 금요일부터 혼자 배추를 절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기억으로 첫째만 시댁에 며칠 있었던 것 같다. 아기가 있는데 배추를 절였다고 했다. 어떻게 했을까?? 가만있지 않을 텐데.....


들어보니 50cm는 족히 높은 침대 위에 아이를 앉혀 놓고는 내려오려고 할 때마다 뭐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말도 못하는 아이한테 말이다.

그렇게 못 내려오게 하면서 미리 배추를 절였던 것이다. 굳이 왜 그럴까? 돌도 안된 아이를 두고 꼭 해야 하나 싶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아주 친절히 부탁했다.

 

" 어머니 그래도 애긴데 너무 혼내지 말아 주세요 "


이후로 그녀는 나의 전화를 그다음 주 만날 때까지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만났을 때 자기한테 뭐라 했다고 섭섭하다고 했다.




몇 년 동안 매년 김장은 며느리끼리 해봐라, 언제 너네가 할 거냐 소리를 달고 김장이 시작되었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 순서라도 틀리거나 배추라도 제대로 안 자르면 웃으면서 자꾸 뭐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 김장에서는 그녀 옆에서  재료, 순서 등등을 다 메모해서 정리를 했다. 그냥 우리끼리 하고 싶었다. 우리끼리 할게요~ 라고 한다고 그녀가 안 오는 것도 아니다. '니들이 해줘봐라' 라는 말은 자기는 가만히 지시만 할테니 나머지 니네가 해봐라는 뜻이다.


매번 하는 말이 있다.

" 김장 때 먹는 보쌈고기가 먹고 싶어서 김장한다."


그거 먹겠다고 맨날 김장을 하네마네 긴장시키면서 김장을 하는 것이라니 더 기가 막히다.


다들 허리도 안 좋고 심지어 아주버님은 김장 돕다가 허리가 다쳐서 그다음해 부터는 형님만 함께 했다. 그녀도 허리가 고질병인데 김장할 때 돼서 많이 아프다 하여 아주버님이 사 먹자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사 먹는 김치가 어떻게 맛있냐며 또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렇게 매번 김장을 했다. 허리가 아프다 하니 그럼 감독관만 하시라고 했다. 옆에서 코칭만 하라고 해줬다. 그래서 열심히 적어 놓은 종이를 보며 바쁘게 움직였지만 버무리려고 보니 미리 풀을 쑤지 않아 또 한마디 들었다. 아직도 그걸 몰라서 미리미리 안 해놨냐고..... 


한 번이라도 기분 좋게 김장을 한 적이 없다.


시집온 해가 늘어 날 수록 숫자만 바뀌고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 넌 시집온지 7년이 됐는데 아직도 모르냐. "

" 넌 10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모르냐. "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생각했다. 내가 60 70이 서도 저렇게 혼나면서 함께 해야 하는건가....

미래가 너무 어두웠다.  




유치원생이던 아이들도 방에서 나오면 안 됐다. 김장에 방해가 되니까....


난 고무장갑을 끼고 버무려도 항상 옷에 많이 묻혔다. 그것도 뭐라 한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농담으로 하더니 매년 묻히니 꼭 못하는 애들이 티를 많이 낸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김장 안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고춧가루 살 때 되면 40만 원이 넘게 벌써 사놓았고 얼마에 샀다고만 전달받는다. 그러면 형님과 상의해서 우리와 반반 부담하고 형님이 대표로 그녀한테 상납했다. 그것도 적다며 말이 나온다. 자기가 따로 5근은 샀다고..... 형님이 30만 원 주길래 웬일인가 했다고... 나랑 나눠서 냈다고 하니 "그럼 그렇지"라고 한다.


김장 나는 수험생처럼 치러지길 형님과 기도했다. 김장이 되길 바라기보다 김장 때 별말 없이 넘어가길 간절히 바랐다. 항상 형님과의 마지막 대화에는 " 이번에도 무사히" 였다.


김장 전 적어놓은 순서를 익히고 재료를 체크해 보았다. 그녀는 매년 김장을 하려고 김장도구를 아예 우리 집에다 가져다 놨다. 그렇게 준비해도 매번 순서가 틀리거나 배추를 자를 때마다 한소리 들었다.


긴장감으로 항상 김장을 했다.




아이들은 재미로 하고 싶어 해 한번은 아이들에게 한 포기씩 버무려 보라고 줬다.  우리 아이들이 잘 못하고 4살된 더  어린 조카는 아주버님이 거들어 줬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는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카는 잘하는데 우리 애들은 못한다고 대놓고 얘기하는 그녀다.  아이들이 억울해했다. 조카는 아빠가 도와줬는데 어떻게 똑같냐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이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아이들한테도 가차 없는 그녀였다.


결국 내 돈 주고 김장하는 꼴인데 매번 좋은 소리도 못 들었다.  제작년 아주버님네와도 이제 안 보게 되었을 때는 우리하고만 김장을 하게 되었는데 나름 일찍 간다고 30분 거리의 그녀를 데리러 아침 8시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늦었다고 뭐라고 했다. 도대체 그럼 몇 시부터 가야 하는 건지.....


그래서 신랑이 안 늦었다고 한마디 하면 그걸로 또 기분 나빠서 어쩌고 저쩌고 뭐라 뭐라 했다. 그렇게 기분 안 좋은 그녀를 데리고 마트를 갔는데 거기서도 아직 기분이 안 풀렸다. 집에 와서 순서대로 김장을 했지만 늦지 않았다. 이렇게 김장하는 날은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서서 모든 행동과 말이 조심스러웠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아프기 일 년 전 마지막 김장이었다.


올해는 연을 끊었고 내가 따로 우리 먹을 만큼의 고춧가루를 샀다. 그리고 신랑한테 문자를 했다.

'시험 보듯 김장하고 싶지 않고 애들하고 여유 있게 우리끼리 하고 싶다.'


이번주 신랑은 시댁에 가서 그녀와 둘이서 김장을 하고 김치를 가져왔다. 난 진짜 안 가져왔으면 했다. 고춧가루값도 안 줬는데 나중에 얻어먹고 무슨 소리를 할지 몰라 싫었다. 하지만 신랑한테는 말하지 못했다. 그냥 우리 먹을꺼는 앞으로 우리끼리 하자고 했다.


이번엔 며느리 없다고 난리는 안친듯하다. 이제는 받아들인 걸까? 김장을 하고 온 신랑이 이 정도양이면 다음 주에 우리끼리 안 해도 될 거 같다고 했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


어쨌든 큰 고비를 두 번 넘었다. 명절도 아웃! 김장도 아웃!


진정 나한테 자유가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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