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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Aug 15. 2019

내가 겪은 캐나다의 근무환경

한국에서 제대로 직장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일했던 학원은 규모가 꽤 큰 편이라 일이 많았다. 학원의 메인이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각종 유치부 행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분명히 내 근무는 6시까지인데 왜 7시, 8시까지 남아있고 가끔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거에 해당하는 보상이 왜 고작 회식에서 먹는 술과 삼겹 살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다 보니 반차, 연차도 없었고 유일한 휴가는 여름에 있는 일주일의 방학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돌아가며 하루씩 출근해야 했다. 그 당시에 내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이거나 취업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남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사실 잘 알지 못했다.

이후에 하나, 둘 취업을 하기 시작했고 잦은 야근과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단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 즈음에 이 곳으로 왔다.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한국인 사장님, 동료들이 있는 곳과 현지인 사장님, 동료들이 있는 곳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한국인들과 일하는 것이 더 말도 잘 통하고 재밌는 일이긴 했지만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컸다. '트레이닝' 이란 명분으로 제대로 임금을 주지도 않으면서 일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와 다른 직원들은 최저시급보다 적은 금액을 받으면서  '넌 이것도 모르냐?' '쟤는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야' 같은 막말까지 들었다.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있는데 굳이 이런 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 운 좋게 한 달 후 현지 일을 구했다. 이미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2-3명 정도 있어 많은 의지가 되었고 보다 쉽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토론토 시내에 여러 지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 모든 게 원칙적으로 이루어졌다. 8시간 근무에 무조건 30분을 쉬어야 했고 일하는 만큼 휴가비도 쌓여갔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지금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꽤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제 내 인생 최초로 영어 막말을, 적어도 잔소리를 들어보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매니저는 되려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너는 아직 배우는 기간이고 (3개월까지) 그래서 자기가 여기 있는 거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욕먹는 것보다 더 당황했었던 것 같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일을 시작한 지 고작 2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총 관리, 감독해야 하는 매니저였다. 그리고 우리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높아지는 직책에 맞춰 월급의 금액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도 같이 커지는 게 맞는 거였다. 내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상사로부터 훈계를 듣고, 남들에게 사죄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학교 졸업이 확정되기도 전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 회사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취업을 위해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졸업 후 첫 직장을 얻기까지 평균 6-7개월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취업준비, 인턴생활 등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싶은 점들이 많았다. 이 곳에선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나와 내 동료들은 사측에 건의도 하고 항의도 했다. 한국에서 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6시가 넘어서도 일을 했고 가끔은 주말 내내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추가 수당은커녕 고용 보험 조차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또 운이 좋게 현지 어학원에 취업이 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캐네디언이라 분위기에 적응하고 친해지기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모든 게 영어라 가끔 알아듣기도, 설명하기도 버거웠지만 전보다는 나았다. 주 40시간을 넘게 일한 적이 없고 무조건 6시에 퇴근했으며, 일하는 시간에 따라서 Sick Hours와 Vacation Fee가 쌓여갔다. 나는 언제든지 미리 말하기만 하면 이 시간들을 쓸 수 있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 회사와 이 곳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업무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명이 해야 하는 일을 한 명이 한다. 이 곳은 두 명이 해야 하는 일을 세 명이서 한다.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유가 넘치고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그만이다. 당연히 누군가 하나 휴가를 가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남은 둘이서 평소의 1.5배만 더 하면 되지 않는가. 이때 1은 한국인과 같은 1이 아니기 때문에 1.5배라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확히 일을 배분해서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업무 이메일을 보내면 '지금은 휴가 중이라 다음 주 월요일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의 자동 답장이 자주 온다.

이런 분위기이기 때문에 굳이 휴가를 위해, 병가를 위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평소에 하던 업무량과 현저하게 차이나는 업무량 때문에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하던 데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다 보면 남들보다 훨씬 빨리 일이 끝났다. 그러면 남은 3시간은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대놓고 유튜브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쩜 남들은 나와 같은 양의 업무를 8시간 동안 처리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이 더디 가고, 시간이 더디 가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현지 회사가 나와 내 친구들이 겪은 것 같지만은 않은가 보다.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캐네디언 상사가 욕을 한다''동료들이 뒤에서 험담을 한다' 같은 고민 글이 가끔 올라온다. 어딜 가나 진상과 미친놈들은 항상 있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만 봐도 이상적인 근무환경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현실에는 '프라다도 못 입는 주제에 악마가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포진해 있다.


언젠가 몬트리올을 여행하던 중에 꽤 비싼 동네를 걸어간 적이 있다.

겉에서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 앞에 양복을 입은 두 백인 아저씨들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다른 아저씨에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일! 그다음이 가족이야. 알겠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캐나다에서.. 아니 그것도 일 년에 한 달을 쉰다는 프랑스 사람들이 남아서 살고 있는 이 퀘벡 지역에서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나와 친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쨌든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한국이라고 무조건 야근에, 상사의 언어폭행에, 박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곳이라고 해서 무조건 각종 보장과 혜택이 가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닐까? 그런 직장에서 일하게 됐어도 주변에서 ‘너는 나은 거야, 나는~' 이라던가 ‘우리 다 그렇게 일해’ 식의 반응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 혹은 어렵게 이직한 곳에서도 그 전 회사와 마찬가지인 상황인 사회와 ‘미친 거 아니야? 신고해'라는 주변 반응과 언제든지 나은 곳으로 이직이 가능한 상황이 있는 사회는 분명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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