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이 궁금한 어느 날 밤에
6월의 밤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라 걷기에 딱이었지만 먹고사는 일에 치인 내가 지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겨우 퇴근길 버스나 타는 것 정도뿐이었다. 내가 이 좋은 날씨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느끼는 것 정도였는데 그렇게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바깥 불빛들을 감상하며 앉아 있다가 자연스럽게 아파트 단지를 보게 되었다.
월요일 밤 9시 아파트 건물엔 불이 켜진 집이 꺼진 집보다 더 많았다. 단지 입구에 있는 카페, 식당, 헬스장이 있는 상가 건물과 아파트 단지 입구 사이로 보이는 단지 내 산책로를 보며 문득 '결혼한 삶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버스에서 내려 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불 켜진 어느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라고 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밥을 먹고,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티비를 보다가 씻고 잔다.
각자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함께한다.
그의 가족이 곧 내 가족이고, 내 가족 또한 그의 가족이다.
저녁 메뉴를 정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앞으로의 인생 계획 같은 큰 일까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한다.
내 인생인데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삶은 어떨까?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는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 맘대로 하지는 못해도 무언가를 할 때 옆에 누가 있으니 외롭지 않아서 좋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침 싱글인 친한 언니가 결혼한 다른 언니에게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삶과 현재의 엄마로서의 삶 중에 뭐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직장인으로서의 삶 또한 매우 싫어했던 나는 나 자신이 둘 다 적성에 맞지 않는, 아주 특이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인정하며 집에 도착했다. 어쩌면 그것이 직장이든 가족이든 어딘가에 속해져 있는 게 싫고 구성원이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기 전 침대에 앉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본다. 죄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배우고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나이가 먹어도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줄기는커녕 늘기만 한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으면서 결혼한 삶은 대체 왜 궁금했던 거야?' 하고 자문해본다. 그것보단 '돈이 많은 삶' 이라던가 '성공하여 유명해진 삶'이 더 궁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열심히 가고 있는 길의 목적지보다는 애초에 내가 가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다른 길이 더 궁금한 게 이상한 걸까? 나는 그 길을 안 간 걸까, 못 간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늦은 시간에도 깨어 있지만 결국 결론은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내가 정한 길을 꿋꿋하게 멋지게 갈 것이다.'이다. 자기 주문이 아니라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