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sppr****, What else?"
굳이 번역하자면 "커피 (자체 브랜드 이름이라 커피로 대체함) , 또 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광고 카피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배우 안성기 님이 있다면 (그나저나 요즘 안성기 님이 나오시는 커피 광고를 못 봤네?) 할리우드엔 조지 클루니 님이 계시다. 꽃중년, 아니 이제 꽃노년 조지 클루니가 커피, 또 뭐?라고 묻는다면 나는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카페에 가서 돈을 주고 커피를 사줘라'라고 했을 수도...
처음 이 광고를 본 것은 꽤 오래전이었는데 줄곧 '집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라고 생각했다. 나는 커피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대형 체인점과 동네 작은 카페, 구수한 맛과 신맛 등을 가리지 않고 전부 즐긴다. 한국에 있을 땐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물론 지금도 아메리카노를 주로 즐긴다) 캐나다에서 드립 커피와 라테의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또 피곤하거나 화가 폭발할 땐 별다방 프라푸치노를 꼭 챙겨 마셨다.
누가 '어디 원두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아 저는 콜롬비아는 어쩌고 저쩌고 예가체프는 어쩌고 저쩌고 이 원두는 어쩌고 저쩌고 할 만큼 커피 전문가는 아니지만 커피라면 그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는 진정한 커피 중독자라고 볼 수 있다. 하루라도 커피를 안 마시면 미쳐버리겠고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기 전에 꼭 커피를 마셔야 한다. 사실 잠만 잘 잘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렇다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싶진 않다.. 그냥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카페에 가지 않는다. 왜?
작년 가을, 오갈 데가 없어진 나는 친구네 집에서 잠깐 신세를 졌었는데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가 어느 날 집에서 캡슐 커피를 내려주었다. 살짝 먹어보고 든 생각은 '아, 나는 왜 먹어보지도 않고 이 기계를 무시했을까?', '아, 왜 나는 그동안 커피값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썼을까?'
집을 나가지 않고도 방 안에서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서 나만 몰랐던 것 마냥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그 친구의 명품 가방, 명품 신발, 고가의 옷들, 돈 많은 남자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부러웠던 게 없었는데 이 캡슐 커피 머신이 방에 있다는 사실은 너무 부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한 언니가 한국에서 가게를 오픈하게 되면 개업 선물로 그 머신을 사주겠다 했고, 거짓말처럼 9개월 만에 서울에 내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거짓말처럼 언니는 진짜로 머신을 사주었다. 언니로부터 샀다는 연락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방방 뛰는 날 보며 엄마는 '저게 미쳤나' 했을 것이다. 이 나이에 좋다고, 기쁘다고 제자리에서 뛰는 어른이라니..
인터넷에서 산 기계가 우리 가게로 배달 오던 날은 최악의 아침을 보낸 후였는데 우울하게 멍 때리며 앉아 있다가 갑자기 택배 아저씨가 들어와서 시크하게 '툭' 머신을 놓고 나가셨을 때 나는 '사람의 기분이 이렇게까지 저기압에서 고기압으로 단숨에 바뀔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아침의 일은 까마득히 잊은 채, 첫 캡슐을 내리며 커피의 고소한 향을 맡고 잔 속에 진한 크레마를 보았다. 후각적, 시각적 만족감이 꽉 채워지며 매우 행복했다. 그리고 이 머신으로 내린 커피가 나의 미각적 만족감을 채워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더 행복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차가 있느냐'는 행복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어떤 분의 강연을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에 그분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차가 없는 것 보다야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겠지만 비싼 차가 있다고 해서 더 행복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가 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고로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고 돈이 적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돈이 너무 없어서 아픈데도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불행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만큼의 돈이 있다면,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돈이 더 많지 않아서 '불행' 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캡슐 커피 머신이 뭐라고 의식의 흐름이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단 말인가. 커피머신이 없던 과거의 나보단 커피 머신이 있는 지금의 내가 훨씬 행복하다. 그러나 더 좋은 사양의 머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카페를 소유한 부잣집 딸보다 내가 더 불행하진 않다. 매일 아침 가게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니 현재까진 '캡슐커피머신이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런지 캡슐 커피를 내릴 때마다 커피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해한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캡슐 커피 대에에에바아아악!!' '나 커피머신 있는 사람이야!! 유후~'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설상가상 기분도 별로고 잔뜩 예민해져 있는 요즘,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느껴본다. 작지만 큰 행복, 커피머신이 가져다준 행복과 여유는 가성비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