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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Jan 12. 2019

나의 개인적인 페미니즘 2

<1에 이어 계속>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라 여자로서 차별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기억이 딱히 없는 나는 이후 모든 사람이, 아니 모든 동물들까지도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더 컸던 학교 수업 첫날, 첫 시간에 너무나 이국적으로 생긴 남자아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한 학기 내내 어떻게든 대화를 나눠보려 노력했지만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나답지 않게 수업이 끝난 후 몰래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가기까지 해 보았지만 별 소득 없이 실패했다.

우연히 마지막 수업시간에 다른 수업을 같이 듣고 있던 그 아이의 친구가 내게 말을 걸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와도 대화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었다. 

이후 또 다른 수업을 같이 듣고 있는 중국인 아줌마에게 '요즘 그 아이와 연락하며 서로 알아가는 중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아이의 국적을 물어보던 아줌마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여성 인권이 가장 낮은 나라들 중 한 곳이니 주의하라며, 사실 한국도 이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힌 남아선호 사상은 중국의 유교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인인 이 아줌마가 지금 내게 뭐라는 건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중국은 여성인권이 굉장히 높은 나라 중 한 나라로 손꼽힌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 여성과 남성의 인권에 차이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계속 있어왔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본 중국 가족들은 남편의 집안일 참여도가 매우 높았으며, 아내가 중요한 일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여성 혐오 범죄가 일어나고 여성 인권 문제가 대두됨과 동시에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의 여성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캐나다에 오고 1년쯤 지난 후, 당시에 만난 한국인 언니로부터였는데, 자신은 페미니스트라며 '한국은 다른 선진 국가들에 비해 여성 인권이 매우 낮은 편이라 한국 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지만, 크면서 큰 성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국의 여성 인권이 낮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만약 고등학교 때 겪었던 급식 사건 같은 일들이 계속 생기고, 남자 형제가 있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자랐다면 나 또한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지칭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자신을 자칭 페미니스트라 부르던 이 언니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에 격분하면서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는데, 여성들은 화장품과 옷 등,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남성들은 여성보다 임금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논리라면 남성이 여성보다 부당하게 임금이 높으므로 남성들이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고, 결혼할 때도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여성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마치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아무 이유 없이 임금이 높고 직장에서 더 쉽게 승진하는 것이 마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보일 것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관점으로 남녀 임금격차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고 잘못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다"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성 차별을 없애 여성 해방과 성 평등을 이루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지 '남성들은 전부 못 낫다' 라던가 '여성으로서 억압받고 차별받아왔으니 똑같이 되갚아 주겠다.'라는 식의 접근법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많은 여성들이 여성다움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외모를 가꾸고, 여성스러운 행동이나 말투를 강요받는 동시에, 수많은 남성들 또한 남성다움, 남자다움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근육을 키우고, 강하고 힘센 이미지를 강요받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성격과 성향과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보편적이라고 해서 꼭 그것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 자신이 남들에게 존중받고 싶은 만큼 똑같이 남들을 존중할 때, 진정한 평등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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