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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Jan 24. 2019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저리주저리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 아무도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나이가 사회생활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에 살면서도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아니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나는 십 년이란 시간 동안 뭔가를 제대로 해본 게 없는 것 같은데,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방황하며, 버티며 살았던 5년과 캐나다에 와서 아등바등 열심히, 버티며 살았던 또 다른 5년 동안 나는 30대가 되었던 것이다.

동양인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누가 물어보면 스물여섯 즈음으로 뻥이나 쳐야겠다' 라며 조금은 한심한 다짐도 해보았다.


그런데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해, 나이의 뒷자리도 바뀌었을 때 (물론 뒷자리는 매년 바뀌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마치 학창 시절 중간고사에서 평균 89점을 받았을 때의 아쉬움보다 86점을 받았을 때의 허무함이 더욱 커 결국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 것 처럼...


어릴 땐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이 '바뀐다, 성장한다, 컸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나는 그대로인데 어떻게 내가 벌써 이 나이지?' 싶은 의아함만 커졌다.

그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생기는 다른 점만 있을 뿐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어느 날 진지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봤다.

나이는 이름 바로 뒤에서 나라는 사람을 가장 쉽고 강하게 설명해주는 간판이 된다. 어느 상황에서나 우리는 이름, 나이, 직업, 사는 곳 정도의 순서로 나를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를 나타내는 네온사인에 적힌 숫자가 해마다 바뀌는 것 같은 일일까?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전자시계의 숫자들처럼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은행 잔고처럼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7살의 순수한 내가 있고, 15살의 시대 반항적인 내가 있고, 20살의 패기 가득한 청춘의 나도 있다. 겹겹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내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쉽다 못해 억울했던 마음이 풀린다. 역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다행이다.


우리는 매년 1살씩 적립하는 적금을 붓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만기금액이 정확히 얼만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모두 현재 자신의 잔액을 보고 뿌듯하고 흐뭇하기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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