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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쓰 Apr 07. 2019

3-3 느는 건 눈치와 임기응변

3장. 좌충우돌 컬리지 적응기

컬리지에서의 첫 일주일이 지났는데 한국인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한 학기인 4개월 동안 오다가다 인사할 수 있는 아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둘째 주 월요일에 학교를 갔더니 강의실에 처음 보는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임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생긴 그 여자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게 와서 인사를 했다. 

한국인이 없다고 아쉬워할 때는 언제고 막상 누군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자 무척이나 어색했다. 첫인사를 마친 후 서로의 시간표를 비교해 보며 어떤 수업을 같이 듣는지 확인해 보았다. 나랑 같은 전공이었던 그 여자아이는 2-3개의 수업이 겹친다는 기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학교를 떠났다. 

인사를 나누고 2주 정도 학교에서 만나며 수업을 같이 듣곤 했었는데, 그 아이는 유독 교수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며 힘들어했다. 아무래도 다니던 어학원을 더 다니면서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나도 전부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적응돼서 괜찮지 않겠냐'라고 했지만 결국  유학원과 상담을 마친 후 학기를 미뤘다. 이후 그 아이와는 연락을 하지 않아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하던 그 아이처럼 나 역시 모든 말을 알아들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내가 외국인임을, 영어를 모국어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말해주던 사람들과는 달리 학교에서의 영어는 서바이벌 그 자체였다. 살아남기 위해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상황 파악은 빠르게  해야 했다.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해도 듣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그럴수록 점점 눈치가 늘어갔다. 


교수가 쭉 말을 하더니 갑자기 30분을 주겠다 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로 눈치를 본다. 재빠르게 의자를 돌려 앉은 아이도 있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단한 팀 과제를 해야 하는 경우인데 이럴 땐 당황하지 말고 동그랗게 앉는 모양이 되도록 자리를 고쳐 앉은 후에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면 무조건 먼저 말을 시작하는 학생이 있다. 그리고 다른 애들이 하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는 상황인건지를 재빠르게 알아낸다. 알아낸 후에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내 의견도 짧게 얘기한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바람에 교수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누군가 한국어로 떠든다면 정신을 반쯤 놓고 있어도, 굳이 집중을 하지 않고 있어도 잘 들리는데 반해 외국어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이른 시간이나 내 상태에 따라 자주 교수의 말을 놓치곤 했는데, 갑자기 수업 중간에 애들이 우르르 일어나면 '아. 쉬는 시간이구나' 갑자기 애들이 가방을 들고 우르르 일어나면 '아. 수업이 끝났구나' 하고 깨달은 적도 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나의 성격을 다소 내성적이고 말이 많지 않은, 덜 사교적인 성격의 사람이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영어를 더 잘했다면 성적이 더 좋았겠지만, 캐나다에선 일을 구할 때 학점을 보지 않으므로 무사히 패스하여 학교를 잘 마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눈치와 임기응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내가 그것을 증명한 살아 있는 예시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하는 토론 수업은 다행히도 첫 학기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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