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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Apr 09. 2019

3-9 지옥 같았던 마지막 학기

3장. 좌충우돌 컬리지 적응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마지막 학기가 왔다. 첫 학기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어리바리했고, 두 번째 학기는 적응이 되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느껴졌고, 세 번째 학기엔 확실히 편했다. 네 번째인 마지막 학기 역시 그럴 것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내 실수였다. 우선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모든 과목들이 다 할 게 많았다. 과제도 많고, 전부 그룹을 짜서 하는 발표 과제가 있었으며 심지어 시험 양도 많았다. 게다가 온라인 코스를 제외한 모든 수업이 백인 캐네디언 교수님들이어서 빠른 영어를 알아들어야 했다. 사실 캐나다식 영어에 익숙해진 터라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 교수님들이 오히려 더 알아듣기 편하기도 했지만...


그중 최악은 영업 (Sales) 수업이었는데,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에 대한 수업으로 어떻게 우리 기업의 물건 혹은 서비스를 다른 기업에게 판매하는지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2인 1조로 팀을 짜서 교수님이 거래처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가상 영업을 하는 것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였는데 이거야 말로 프레젠테이션보다 더 최악이었다. 우리가 시험 볼 때 다른 모든 학생들이 우리를 지켜봤으며, 교수님이 무엇을 질문할지 모르기 때문에 준비도 철저하게 해야 했다. 무엇보다 너무 떨려서 머리가 하얘진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영어로 문장을 만들어 대답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는 한국어로도 말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단순히 수업과 시험이 어려웠던 게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는 수업 도중 질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무작위로 학생을 선택해 대답하게끔 했는데, 대답을 못하면 꼭 한 마디씩 하며 면박을 줬다. 답을 아는 애들이 손을 들어도 시키지 않았는데, 출석 여부를 학점에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수업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도 바빠 죽겠는데 질문까지 하니까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에게도 질문을 했고 '미안한데 생각나는 게 없다'라고 하자 역시나 면박을 줬다. 한 번은 내 앞에 앉아 있던 중국인 여자애에게 질문을 하고 그 아이가 대답을 못 하자 정말 심하게 면박을 주었는데 백인 학생이 대답을 못 했을 때와 반응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수업을 바꿀 수 있는지도 알아봤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 버렸다. 


그 사람이, 그 수업이 너무 싫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수업 내용도 나와는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객도 아닌 기업에게 무언가를 팔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그런 일을 할 예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하면 계약을 하고 하나라도 더 팔 것인가'를 배우는 게 솔직히 말하면 좀 속물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마케팅 전공 수업 또한 백인 캐네디언 교수님이 너무 깐깐했는데, 수업에 늦은 학생에겐 꼭 인사를 하며 면박을 주었다. 결국 나는 '3달만 참자, 2달만 참자'라고 생각하며 버티듯이 학교를 다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제 졸업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가 폭발해 버렸다. 하루에 12시간씩 잠을 잤고, 수업이 없는 날엔 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무렵 살도 찌고 몸도 많이 망가졌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흘러 기말고사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영업 수업의 마지막 과제를 위해 실제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 인터뷰하게 되었다. 정해진 질문들을 하고 대답을 정리하고 있는데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 그분이 나와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즈니스는 돈이 아니라 결국엔 사람이야." 

그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모든 수업이 결국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인 것 같아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물론 중요하고 나 또한 관심이 있긴 하지만 다 상술처럼 느껴져 나 자신을 나름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안 맞는다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사람이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며,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결국엔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다.


깐깐했던 마케팅 수업 교수님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갑자기 각 나라별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화면에 띄워 놓고 읽기 시작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고, 단 한 번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고맙다는 본인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더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과 각 학생들의 배경과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져 정말 감동적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에게 한국어 '감사합니다'의 정확한 발음을 물어보고 세네 번 정도 따라 하며 연습하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까먹겠지만... 

결국 학교생활도,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마지막 학기를 마쳤다. 학교를 마쳤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고 막상 떠나려고 하니 시원섭섭했다. 컬리지 생활은 워홀 생활과는 확실히 달랐고 내가 느끼는 캐나다라는 나라 또한 완전히 달랐으니 졸업 후 다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도 또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타리오 컬리지 졸업장. 낙제 없이 무사히 학교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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