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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Feb 23. 2019

고양이를 낚는 남자, 유튜버 haha ha



꼬불꼬불한 일차선 도로에 접어들자 흰 눈이 걷혀있다. 눈 대신 정갈한 빗질 자국이 길을 안내한다. 이 반듯한 심성의 집주인은 사실 인기 유튜버다.  



  

아재로 오해받는 청년을 만나다 


유튜브 haha ha는 33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이자 운영하는 청년의 필명이다. 그는 한적한 시골의 양어장을 무대로 길고양이 먹방을 올린다. 먹음직스러운 방어부터 사료에 이르기까지, 고양이에게 대접하는 음식 종류도 다양하다. 그가 올린 동영상은 70만이 넘는 뷰를 기록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냐고? 꾸미지 않는 것이 노하우다. 


영상 속의 지나치게 정직한 폰트와 무심한 편집, 능수능란한 낚시 실력으로 haha ha는 못해도 40대 중반 아저씨일 것이라는 누리꾼들의 추측을 한 몸에 받았다. 길고양이의 인간친구들은 ‘아재의 길고양이 먹방 채널’을 널리 전파했다. 하지만 청명한 겨울 오후,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은 호리호리하고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다. 


 



영원히 고통 받는 물고기 사료포대 


청년이 귀향한 것은 5년 전, 가업인 양어장을 잇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양어장 일을 거들다 보니, 뜻밖의 골칫덩이가 존재했다. 길고양이들이었다. 배고픈 고양이들이 물고기 사료포대를 뜯어먹는 것이었다. 꽁꽁 싸매고 덮어두어도 그때뿐, 녀석들은 귀신같이 사료를 찾아 구멍을 내놓기 일쑤였다. 


‘이 망할 고양이 놈들, 물고기 사료포대 뜯지 말고 이거나 먹고 가라’는 심정으로 고양이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들은 차츰 경계를 풀고 청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밥 달라고 뻔뻔하게 애교를 부리는 녀석, 밥시간이 오면 채근하는 녀석까지 생겨났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어쩌다 보니 캣대디에 유튜버까지 되어 있었다.(하지만 물고기 사료포대는 아직도 종종 뜯겨있다.)  


 



그냥 남는 물고기 나눠 먹은 건데요 


양어장을 운영하다 보니, 지천에 널린 것이 물고기였다. 처음엔 집 근처에서 배스를 낚아 고양이들에게 주었지만 차츰 어종이 다양해졌다. 얼린 빙어나 잉어를 삶아 먹이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시골이라 가능한 길고양이 특식이다. 정성이 대단하다고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친다. “그냥 남는 물고기 나눠준 것 밖에 없어요.” 


실제로 옆에서 본 그는 고양이들을 딱히 터치하거나 뒤쫓지 않는다. 그저 밥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아픈 것 같으면 약을 타다 먹인다. 너구리와 꿩이 오가는 야생의 고양이들은 한 곳에 오랜 기간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점을 잘 아는 청년은 길고양이들에게 깊이 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  



 

  


작은 고양이 삼색이를 만나고 


그런 그가 변했다. 미세하지만 애묘인들은 알아차릴 수 있는 변화다. 고양이 겨울 집을 만들더니 최근에는 짧은 여행으로 집을 비우며 고양이들이 배를 곪을까 자동 급식기까지 만들었다. 무심한 애정이 어쩐지 점점 뜨끈해진 듯하다. 이 변화는 작은 고양이 ‘삼색이’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돌보던 길고양이는 모두 고등어 태비 무늬였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뜬금없이 어디선가 작은 삼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야위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던 새끼 고양이였다. 경계의 시기도 잠시, 청년의 곁에서는 ‘등 따시고 배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삼색이가 본성을 보였다. 청년이 발을 떼기 힘들 정도로 머리를 들이대고 틈만 나면 무릎을 타고 올라오는 무릎냥이가 된 것이다. 경계하던 다른 고양이들도 많이 너그러워져 이제는 겸상도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길고양이 먹방에 험로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청년의 캣대디 활동과 길고양이 먹방 촬영은 앞으로도 ‘순항’이 예정되어 있다. 사유지인 너른 양어장에서 마음 놓고 길고양이들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집도 꽤 거리가 있는데다, 그마저도 다들 동물을 좋아한단다. 고양이들은 삼색이를 빼고는 다들 야생성이 강해 사람을 따르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털에 윤기가 흐른다. 질 좋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방어를 간식으로 먹는 이곳의 고양이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이날도 길고양이들에게 특식으로 삶은 잉어가 제공되었다. 식전부터 발치에서 애교를 부리던 삼색이는 물론이고 어느새 발소리도 없이 태비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고양이들은 얼른 달라며 울어대는데 청년이 머뭇거린다. 


“왜 안 주시나요?” 

“식혀야 해요. 뜨거워서...” 


낚시로 잡은 생선을 삶아 살뜰히 발라 길고양이를 먹이는 청년, 단언컨대 만나본 가장 특이한 캣대디였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다 비슷하게 길고양이를 챙길 필요는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줄 수 있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우리는 진화하고 있다. 양어장의 먹방 요정 길고양이와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캣대디가 그 예다.  



+양어장의 길고양이들을 더 보고 싶다면 (Youtube / haha ha)  



<매거진 C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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