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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Sep 01. 2021

통통해서 기내 동반 불가, 고양이 이사 대작전

“정말 괜찮겠어?” 걱정스럽게 내가 물었다. 그러자 남편인 B는 “응.”이라며 짧고 비장하게 답했다. 우리는 손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B는 항구로, 나는 공항으로.


지난 2017년 12월, 우리는 제주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섬에서 육지로 가전과 가구를 옮기는 이사 비용은 수백만 원에 달했다. 하지만 손 떨리는 이사비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키우는 두 마리 고양이를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특히 첫째인 반냐가 걱정이었다.


우리 집 두 마리 고양이는 모든 면에서 판이하다. 첫째인 반냐는 8kg의 ‘거대묘’인데다 바깥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예민하다. 반냐는 몸을 쓰다듬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만 허용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다. 그에 반해 둘째인 애월은 3kg를 조금 넘기는 작은 몸집에 호기심이 왕성하다. 낯가림은 전혀 없으며 강아지처럼 처음 보는 사람도 졸졸 쫓아다니는 해맑은 성격을 지녔다. 덩치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다르다. 이사를 결정한 뒤 두 녀석만 생각하면 불안이 엄습했다. 예민한 반냐가 가장 문제였지만 유순한 애월이라고 해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자기 영역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는 고양이 (출처:unsplash)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집)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고양이가 그렇다. 드물게 산책이나 외출이 가능한 고양이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 우리 집 고양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반냐는 동물병원을 가기 위해 이동장을 꺼내오기만 해도 후다닥 소파 밑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작은 방으로 도망치곤 했다. 추격전을 반복하며 이동장에 넣고 나면 반냐는 몹시 불안해하며 몸을 떨었다. 이런 녀석을 데리고 제주공항에서 김포, 김포에서 다시 성남까지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일도 아닌 이사인 것을. 고양이들도 사람도 고생을 하겠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타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튼튼한 이동장 두 개를 준비해서 내가 한 녀석, B가 한 녀석 데리고 타면 괜찮으리라.


하지만 고양이 비행기 탑승을 위해 절차를 알아보던 중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당시 국내선 항공사들은 기내에 탈 수 있는 반려동물의 무게를 캐리어를 포함해 5kg 이내로 제한하고 있었다. 두 녀석의 운명이 여기서 갈렸다. 성묘(어른 고양이) 치고 저체중인 애월이는 이동장에 넣어 기내에 탈 수 있지만 우람한 체격의 반냐는 선택지가 없었다. 반냐는 무조건 수하물 칸에 타야 했다. 하지만 예민한 반냐가 나나 B 없이 수하물 칸에서 불안에 떨 것을 생각하니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애 태우던 내게 B가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수하물 칸에 반냐 혼자 두는 건 좀 불안해. 자기는 애월이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나는 반냐 데리고 배 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원래 우리는 자가용을 육지로 탁송할 예정이었다. 비행기로는 제주에서 김포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었기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이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냐가 변수였다. B는 아무래도 걱정이 됐는지 반냐를 자동차에 태우고 제주에서 완도로, 완도에서 다시 경기도로 오겠다고 했다. 하늘 길로는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뱃길과 육로로 9시간은 족히 달려야 하는 코스였다. 한 명이라도 집에 짐이 들어가는 현장에 있어야 하니 둘이 동시에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B는 반냐와 함께, 나는 애월이와 함께 육지로 향했다.



지옥의 코스를 선택한 자여...  (출처:unsplash)



이사 당일, B는 일찍부터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몇 시간 뒤 나는 애월이를 데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기내에서도 나는 고양이 이동장을 좌석 아래 발치에 두고 가끔 상태를 체크하며 안전하게 김포까지 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이삿짐을 맞이했고 이삿짐센터 직원분들과 함께 가전 위치를 정하고 살림을 정리했다. B는 그날 밤 8시가 다 되어서 녹초가 된 얼굴로 집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이 겹쳐 예상보다 한 시간 정도 더 걸린 후였다. 반냐도 기진맥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그날 밤 쓰러지듯 잠들었다.


한 녀석은 비행기, 다른 한 녀석은 여객선과 육로... 이 복잡다단한 섬-육지 이사를 겪고 나서 나는 고양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겠다는 마음을 아예 접었다.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한 장거리 이사는 꿈도 꾸지 않기로 한 것이다. 두 녀석을 비행기 안에서 안전하게 케어할 수 있다면 모를까 지난 이사와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벌이고 싶지 않아 졌다.


그래도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이동권과 관련해 국내 항공사들 사이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듯하다. 지난 7월 세계일보 기사(‘펫팸족’을 잡아라...반려동물 동반 탑승객 모시기 경쟁)에 따르면 A 항공사는 올해부터 기내 동반 가능한 반려동물 무게를 기존의 5~7kg에서 운송용기 포함 9kg으로 늘렸다. B 항공사는 올해 반려동물 운송 기준을 국내에서 가장 높은 10kg으로 변경했다. 우리 집 첫째 반냐의 경우 8kg 정도가 되니 캐리어를 포함해 9kg을 넘기게 되는데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항공사가 기존에는 전무했다가 올해부터는 한 곳이 생긴 셈이다.



성묘는 좀 통통하다 싶으면 6-7kg은 금방 넘긴다. 그러니 기존의 이동장 포함 5kg 규정은 지키기 쉽지 않다. (출처:unsplash)



반려동물의 이동과 관련해 몇몇 항공사들이 무게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사실 기존 거의 대부분 항공사가 고수하던 ‘이동장 포함 5kg’ 제한은 고양이를 키우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기준이었다. 우리 집 반냐처럼 거대묘가 아니어도 성묘는 보통 5kg 안팎이라서 사실상 기내에 함께 탈 수 있는 고양이는 극소수였을 것이다. 물론 고양이는 개와 달라서 동반 여행이 쉽지 않지만, 우리처럼 이사나 다른 불가피한 이유로 고양이와 함께 비행기를 이용하고자 했던 이들도 과거에는 현실성 없는 무게 제한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지 않았을까. 일부 항공사들의 규정 변화가 반가운 이유다.


다시 고양이들과 제주에 갈 일이 생길까. 혹시라도 운이 좋아 다시 제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사람 둘 고양이 둘이 첩보 작전 짜듯 찢어지지 않고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포동포동한 고양이도 날씬한 고양이도 수하물 말고 좌석을 하나씩 사서 녀석들 이름이 적힌 항공권도 받아볼 수 있을까. (아, 승객 가운데 알레르기가 있는 분도 있을 수 있으니 기왕이면 반려동물 동반 가족 전용 칸이 생겨도 좋겠다.) 작게나마 변화는 시작된 것 같으니 아예 꾸지 못할 꿈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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