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적이고 내밀하던 취미, 이젠 같이 해보고 싶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독서토론과 글쓰기가 결합된 방식이었는데, 나는 글쓰기에 방점을 찍고 수업을 신청했다. 독서토론 글자 따윈 잘 보이지도 않았다. 유려한 글쓰기 스킬을 주워보겠다는 시커먼 속내로 수업에 임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런 건 없다. ‘일확천글’을 바라고 들어간 수업에서 나는 스킬 획득은커녕 타인의 글에 감복해 줄줄 울면서 휴지나 축내다 돌아왔다. 절절한 연애담부터 어린 날의 상처까지, 나를 울린 이야기는 모두 꾸준히 써온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역시 글쓰기에 요행은 없다는 것만 재확인했다.
글쓰기 비책을 배우진 못했지만(그런 게 없으니까) 소중한 가르침을 몇 가지 얻었다. 첫 번째로 글 잘 쓰는 사람은 많고 많으니 애써 잘 쓰려 하기 보다는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길 찾아서 해봐야겠다는 것. 두 번째로 만성 비염인은 눈물이 날 때 눈보다 코를 가려야 한다는 것. 합평 시간에 애잔한 이야길 듣다 몇 번 코로 주르륵 맑은 물을 흘리고 난 뒤 얻은 값진 교훈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함께 읽기’라는 게 있다는 것.
일생 내게 독서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놀이였다. 어려서부터 귀차니스트였던 나는 몸을 움직이는 대신 눈알만 움직여 책 속 세상에서 뛰놀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메리 포핀스나 작은아씨들, 왕도둑 호첸플로츠에 열광했고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퇴마록과 드래곤라자, 해리포터 시리즈를 시작으로 각종 소설을 섭렵했다. 집안 사정으로 자주 전학을 다녔지만 괜찮았다. 책만 열면 어제 하다 만 모험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 사그락 스윽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니까.
(*한국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 속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인사말)
그렇게 동반자는 필요 없는, 나와 책만 있으면 그만인 자족의 세계에서 퍽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심지어 이 둘을 합쳐 모바일 쇼핑이 나온 이후로는 책과 급격히 소원해졌지만. 하여튼 가까울 때도 소원할 때도 책은 내게 1인분이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기 위해 나간 수업에서 매 시간 독서 토론을 진행한단다. 함께 읽기라니. 토론이라니. 대체 책을 같이 들여다 봐 무얼 누린단 말인가.
미심쩍은 얼굴로 앉아있으니 수업 선생님이 각자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낭독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 뭐, 나도 감동받은 구절은 있으니까. 가장 좋았던 페이지를 펴고 헛기침을 한 뒤 낭독을 시작했다. 어? 내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탁했나? 정신줄을 잡고 애써 낭랑한 목소리를 짜내본다. 그러자 가래가 끓었다. 낭독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24일이니까 24번이 일어나서 읽어라’ 하신 뒤로 처음 소리 내 책을 읽었다. 내 차례가 끝나고 다른 이들을 관찰했다. 다들 차분하게 낭독한 뒤 자기 생각까지 덧붙이는 모습이 근사하다. 다음 시간엔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고대하던 다음 수업, 함께 들여다볼 책은 박상영 소설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여전히 함께 읽기의 효용감은 모르겠지만 가래 방지용 목캔디와 책 내용에 덧붙일 ‘멘트’를 준비했다. 귀차니스트도 할 땐 한다 이거야, 생각하며 유유히 낭독한 뒤 내 생각까지 덧붙였다. 흐뭇한 얼굴로 다음 차례를 들어본다. 노란 단발머리의 수업 참여자가 또박또박 낭독하고 자기 생각을 얹는다. 여기까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황급히 메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얘기하다보니 떠오른 건데요. 대도시의 사랑법이 좋았다면 멀리사 브로더의 ‘오늘 너무 슬픔’이라는 책도 추천하고 싶어요.”
이런 제길. 너무 멋있잖아! 어떻게 책을 낭독하는 자리에서 다른 책 추천이 나오는건데! 좌절하며 오늘 너무 슬픔 여섯 글자를 노트에 휘갈겨 적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그녀가 추천한 책이 궁금해져버렸기 때문에. 그 책은 내가 1인분의 독서만 했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종류의 몹시 야하고 적나라하며 온갖 종류의 타락과 중독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숨에 다 읽었다. 야해서 그런건 아니다.
목캔디와 낭랑한 목소리, 책에 대한 감상평까지는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서모임 ‘초보’인 나는 책에서 연결고리를 찾아 다른 책으로 이어주는 안내자 역할까지는 무리였다. 그 날부터 헛된 욕망을 접고 독서 모임 선배들이 이끄는 대로 책과 책 사이를 황홀하게 거닐었다. 책을 읽고 비슷한 결의 영화를 추천하는 사람부터 시집 속 시 한 편을 외워와 암송으로 들려주는 사람까지... 나는 그저 그들의 손에 손을 맡겼다. 그러자 혼자 ‘읽고 치우던’ 시절의 독서와는 다른 재미가 보였다.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 몇 줄을 필사했더니 책 내용이 휘딱 망각의 세계로 가버리지 않고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과 좋은 책을 같이 읽고 싶어 쭈쭈바 먹던 시절의 완독 리스트까지 죄다 헤집었더니 잊고 살던 옛 책이 떠올라 로알드 달 소설을 15년 만에 다시 읽었다.
그렇게 10주간 재독과 필사를 넘나들며 기차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시간이었고 모두 돌아가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아... 이럴수가. 이제 막 함께 읽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는데.
이대로 끝낼 순 없다. 귀차니스트이지만 놀이동산 가는 날이면 늘 제일 먼저 일어나던 게 나다. 마지막 수업 뒤풀이에서 주도면밀하게 수강생들의 번호를 딴 뒤 모임을 만들었다. 글쓰기와 독서 후속 모임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새는 동네 책방을 기웃대고 있다. 맞춤한 독서 모임에 들어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하나 만들어 볼 참이다. 올 봄에는 책을 읽고 싶다. 1인분이 아닌 다인분의 독서를 하고 싶다. 사무치게 좋았던 구절은 소리 내 타인에게 읽어주고 싶다. 타인에게 와닿았던 구절도 들어보고 싶다. 가래 잘 끓는 귀차니스트와 함께 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사람 어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