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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May 06. 2020

방송이 스포트라이트를 끄는 곳

그리고 알지 못하는 피디의 죽음

방송에 성역은 없다. 방송국 카메라와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대통령도 교황도 만난다. 머나먼 타국의 대규모 시위나 내전지역도 방문한다. 이들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하지만 가지 않는 곳은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꺼버리는 곳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방송국’이다. 방송국 안에서 벌어진 일을 방송은 고발하지 않는다. 


얼마 전 방송작가노조(방송작가 유니온)를 통해 청주지역 한 피디의 죽음을 알게 됐다. 지역도, 업무영역도 접점이 없어 노조가 아니었다면 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 언론비평지를 제외하고는 그에 관한 심층기사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사망 소식을 먼저 접하고 나서야 나는 그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근무해온 이재학 피디는 지난 2018년 동료 프리랜서들의 처우 개선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자 사측은 이 피디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소송으로 맞섰다.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지만 이 피디는 1심에서 패소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이 피디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주일에 5일에서 7일을 출근하고, 사무는 청주방송 안에서 봤고, 정규방송에 특집 방송까지 연출했는데도 재판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2월 4일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여전히 방송가는 고요하다. 


방송계만큼 ‘좋아서 하는 사람’이 많은 업계도 드물다. 한 방송사 안에는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정규직과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이들이 적은 급여와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송계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이 좋아서다. 이들은 밤샘근무를 하고 생방송을 무사히 내보낸 뒤 엔딩 스크롤에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그 짧은 순간으로 또 다음 회차를 만들 기력을 얻는다. 


이재학 피디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의 별명은 ‘라꾸라꾸’였단다. 장시간 근무로 간이침대를 이용해서 붙은 별칭이었다. 묵묵히 일해온 그가 근무 14년 만에 처음으로 사측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조연출과 작가의 임금을 올리고 최소 제작 인원을 확보해달라는 요구였다. 당시 14년 차 피디이던 그의 한 달 급여는 160만 원 수준이었다. 그는 요구 당일 하차 통보를 받았다.




나는 이재학 피디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나 역시 지난해 일하던 프로그램에서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하고 구두로 하차 통보를 받았다. 정규직 피디가 바뀌어서, 출산이 임박해서, 의견 제시를 했다는 이유로 직을 박탈당한 방송계 프리랜서들의 사례는 끝도 없다. 


작가든, 피디든, 진행자든 한국에서 일하는 방송계 프리랜서라면 비슷한 일을 겪는다. 운이 좋으면 한두 번, 운이 나쁘면 수십 번. 고장 나거나(아프거나) 끼익 거리면(의견을 제시하면) 버려진다. 사람이 부품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살다 보면 가끔 내가 마이크 한 대보다 가치가 없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이 기형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방송가에서는 사람을 ‘쓰다 버리는’ 행태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다 버려진’ 이들이 최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재학 피디가 그랬고 부당해고 이후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방송작가가 그랬다. 이들은, 나는, 우리는 단지 쓰다 버리는 부품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받지 못해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등졌다. 


이런 일을 보고 듣고 겪으니 점점 방송을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면 저 드라마 스태프는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았을까, 밤새고 수당은 받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작가들을 ‘갈아 넣기’로 유명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면 저 프로그램 막내작가는 누구를 고발하고 싶을까 궁금해진다. 공정을 외치는 방송사 안에서 이뤄지는 불공정은 대체 어디에 고해야 하나.


이미 늦었다. 더 늦기 전에,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사람을 쓰다 버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방송계 프리랜서들에게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품처럼 소모되는 방송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알려져야 한다. 알려지기 위해서는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하다. 방송이 방송사의 부당함을 공개할 수 있어야 하고, 내부 문제를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방송사는 성역이 아니다. 또 하나의 노동현장일 뿐이다. 나는 전직 방송업계 노동자로서, 시청자로서, 시민으로서 요구한다. 방송이 이재학 피디의 죽음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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