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자매> 이야기
* 이 글에는 영화 ‘세 자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났다. 눈물이 흘렀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갔다.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어서 현실로 돌아오라는 듯 상영관 안에 불이 켜졌다.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훤한 빛 아래서 맘 놓고 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눈물을 그치지도 못해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켰다. 함께 영화를 본 친구가 팔을 잡아주어 그녀에게 의지한 채 상영관을 나갔다.
요동치던 감정을 수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헹궜다. 친구는 하도 집중하고 봐서 어깨가 뻐근하다고 했다. 나는 영화관 바닥에 드러누워서 꺼이꺼이 울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그러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 실제로 그러진 않았다. 대신 우리는 낮술을 마시러 갔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우리가 겪고 목격한 가정 폭력을 이야기했다.
단언할 수 있다. <세 자매>는 쉬운 영화가 아니다. 특히 가정 폭력에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영화 초반, 세 자매 가운데 첫째 희숙(김선영)이 주눅 든 표정으로 거리를 걸을 때부터 마음이 내려앉았다. 스크린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패잔병 같은 얼굴로 살았다. 가난해서,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가정 폭력을 당해서, 빚이 많아서, 그래서 나와 동생을 힘들게 해서. 이 모든 게 엄마에겐 ‘자기 탓’이었다. 영화 속 희숙이 그랬다. 그녀는 “그지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버릇없는 딸과 가끔 나타나 수금하듯 돈만 빼가는 남편에게도 그저 비굴하게 웃어 보일 뿐 화낼 줄을 모른다. 그녀가 가진 거라곤 남편 때문에 생긴 사채 빚과 몸에 생긴 암 덩어리가 전부다. 견디기 힘든 날이면 그녀는 몰래 자해를 한다. (이쯤부터 아실 수 있으리라. 만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걸.)
엄마처럼 희숙도 남편으로 인한 빚이 있었고, 희숙처럼 엄마도 기댈 곳이 없었다. 두 여자가 너무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엄마의 얼굴과 대면해야 했다. 영화 중후반부에 희숙이 딸을 보며 “사람들한테 어떻게 해야 날 안 싫어할까?” 묻는 장면에서는 소리 내 울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영화의 근원은 가정폭력이다. 첫째 희숙의 비굴함도, 둘째 미연(문소리)의 완벽한 삶을 향한 집착도, 셋째 미옥(장윤주)의 불안정함도 아버지의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세 자매가 대체 왜 저렇게 살까, 의아하던 관객은 그녀들의 유년시절로 함께 플래시백 한 뒤 알게 된다. 세 자매는 뿌리 깊은 상처를 애써 묻어두고 사느라 괜찮을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생일모임에서 각자의 상처가 터져 나온다. 내내 이성적이던 미연은 아버지에게 “사과하라”며 서슬 퍼렇게 소리친다.
세 자매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받지 못한다. 이 점마저도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입맛이 썼다.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가정 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가해 사실조차 잊(은척 하)거나 부인한다.
세 자매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딘가 후련한 얼굴로 바닷가를 향한다. 모래사장을 거닐다 처음으로 셋의 셀피를 남긴다. 영화 내내 옹송그리고 있다가 처음으로 편안하게 웃는 희숙의 얼굴과 엔딩곡으로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깔리자 또 줄줄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보며 내가 보고 겪은 가정 폭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울음 끝이 그렇게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내 주변의 희숙과 미연, 미옥이 떠올라서.
영화를 본 뒤 별점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세 자매> 감상평을 살폈다. 다양한 평이 있었지만 “불행 서사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싶다. 나와 친구는 영화를 본 뒤 “어떻게 보면 되게 흔한 이야기”라고 감상을 나눴었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가정 폭력 사례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 어린 미연과 미옥에게 슈퍼 아저씨가 한 말처럼, 세상은 “아버지를 쓰레기로 만들 거냐”며 피해자가 입 다물길 종용했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건 “가족끼리 잘 화해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1984년생이니 내 앞뒤 세대도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이 꽤 있을 거다.
내내 어둡고 무겁고 곤혹스럽게 흘러가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자신에겐 넌덜머리 나고 피로감 느껴지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사실이라는 걸. ‘지나친 불행 서사’를 겪은 이들이 당신 주변에도 있다는 걸. 그 평범한 사람의 서사를 이제 당신이 알게 되었다는 걸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가정 폭력과 가부장주의를 겪은 내게는 이 영화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의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가정에서 겪은 유년의 트라우마와 화해하지 못하고 고단하게 사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